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지 3년이 지난 지금, 내 기억에 아직도 뚜렷한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낭트 해변에서 흥겹게 어울려 삼바를 추며
즐거워 하던 브라질, 프랑스, 모로코 축구 팬들의 모습이다.

월드컵은 한국의 10개 도시를 거의 한 달간 세계 속에 내놓는 행사이다.
개최 도시의 특성을 강조하면서도 한 나라의 통일된 모습을 보이도록
운영해야 한다. 가령 부산에서 브라질이 경기를 하면 전 세계의 매스컴이
부산 경기장에 모인다. 프랑스가 광주에서 경기를 하면 '빛 고을'
광주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세계 언론은 당연히 해당
지역 문화에 주목한다. 그래서 월드컵과 함께 진행될 문화이벤트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흔히 문화이벤트라고 하면 우리 것, 가장 한국적인 것을 내놓는
것만이 세계를 향한 우리의 문화행사라고 생각한다. 종일 사물놀이를
하고 판소리나 부채춤으로만 손님 대접을 하면, 처음에는 신기해서
좋아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은 할 일이 없다면서 숙소로 돌아갈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월드컵 때 프랑스 문화와 참가국 문화를 교묘하게 절충해
함께 즐기면서 지방과 지방의 특산품을 적극 홍보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예를 들면 브라질과 모로코 팀의 경기가 열린 낭트에서는 해변에 브라질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풍경을 재현하고 삼바 대회를 열었다. 낭트시는
아예 코파카바나의 모래를 공수해다가 해변에 깔고 거기서 미스 프랑스
98을 뽑고 삼바리듬이 울려퍼지도록 했다. 낭트를 찾은 브라질
축구팬들은 밤새도록 그 모래를 밟으며 프랑스인, 모로코인들과 어울려
낭만의 밤을 즐겼다.

덴마크와 사우디 경기가 열렸던 랑스시에서는 '동화의 나라'
덴마크에서 온 응원단들을 위해 동화 속의 거인이나 괴물, 인형과
영웅들을 만들어서 가장 행렬을 벌였다. 다른 개최도시들도 이런
행사들과 함께 자기 고장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를 내놓고 대대적인 축제를
열었는가 하면 큰 벽화를 제작해 프랑스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리시에서 월드컵 전야제 때 개방한 샹젤리제 거리의
대대적인 축제와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문화이벤트도 성황을 이뤘다.

이번 월드컵은 여러모로 일본과 비교된다는 부담이 있다. 그리고 사실
일본이 우리보다 나은 국제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뛰어나고
오래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성공한 월드컵을 분석하고, 조금만 멀리
보고 기획하면 우리도 실속을 차리며 브라질 응원단과 삼바를, 프랑스
응원단과 샹송을 즐기는 훌륭한 문화 월드컵을 치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김주용 / 프랑스월드컵 미디어 코디네이트·
영국 임페리얼대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