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볼을 잡으면 관중들은 두가지 모습이었다.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잔뜩 숨을 죽이거나. 하지만 뭔가 될 것 같은 예감과 한 방
터뜨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았다.
1년3개월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단 황선홍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2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98년5월27일 체코전 이후 3년여만에 맛보는 A매치 골이었다.
큰 대회마다 따라다니던 불운도 2002월드컵까지 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한발짝 물러섰다. 2승1패로 4강엔 오르지 못했지만 '한국의
스트라이커'는 역시 황선홍이었다. A매치 89게임 출전에 47골.
서른 중반에 접어든 그의 얼굴은 웃을 때마다 보기 좋은 주름이
물결쳤다. 짐을 꾸려 대표팀 숙소를 떠나는 그를 만나봤다.
-멕시코전(1일)서 첫 골을 터뜨린 소감은.
▲굉장히 기뻤다. 팬들과 히딩크 감독한테 심판받는 기분이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건 골이었다. 1년 5개월만의 A매치
경기였고 히딩크 감독이 나를 보지도 않고 뽑았기 때문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었다.
-큰 경기마다 부상으로 뛰지 못한 징크스를 깼는데.
▲98월드컵 직전 무릎을 다친 뒤 실망이 컸다. 은퇴까지 고려했었다.
그러나 99년 J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내년 월드컵까지 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난해 12월초 왼쪽 어깨수술(습관성 탈구)을 받고 1주일만에
퇴원해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목표가 없었다면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프랑스에 0대5로 패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프랑스는 최상이었고 한국은 최악이었다. 심적으로도 부담스러웠고
비가 와서 잔디가 미끄러웠다. 20분만에 두 골을 먹은 게 컸다. 전반을
0-0으로 끌고갔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프랑스는 패스가 빨랐고 2선과
도와주는 사람 이외에 제3자의 움직임이 위협적이었다.
-한국의 골결정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
▲신이 아닌 이상 기회가 났을 때 다 넣을 수는 없다. 뒤에서 좋은
볼이 안 들어오면 원하는 공격을 만들 수 없다. 유럽과 달리 군대
다녀와서 26∼27세가 돼서 잔디를 밟는 건 엄연한 차이다. 좋은 경기장이
늘어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히딩크 감독과 처음 손발을 맞췄는데.
▲확실히 발전된 모습이다. 스트라이커지만 미드필더나 처진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했다. 수비 부담도 늘었다. 오버래핑 나가면 무조건
맨투맨으로 붙어야 한다. 나이 먹었다고 안 쫓아다닐 수 없다.
페널티에어리어까지 침투했다가 공격땐 사이드로 빨리 백코트해야 한다.
-라이벌 일본이 조 1위로 4강에 올라갔다.
▲일본은 개인 능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조직력이 좋다. 트루시에 감독
부임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전술적인 면에서 완성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일본은 유럽 강팀들과 평가전을 자주 갖는다. 우리가 일본이 거친
길을 한발 늦게 따라가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한다는 게
중요하다.
-한국이 유럽의 벽을 넘기 위해선 필요한 게 있다면.
▲먼저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또 많은 경기 경험에서 나오는 운영
능력을 길러야 한다. 돈을 들여서라도 유럽 톱클래스팀들과 친선경기를
많이 해야 한다.
-경기전 어떻게 마음의 준비를 하나.
▲축구는 두뇌플레이가 중요하다. 경기 전날 30분 정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페널티에어리어 앞에서 몇가지 상황을 연상하며 골
넣는 장면을 뇌리에 계속 집어넣는다. 수첩에 '스트라이커 지침' 8가지를
적어놓고 틈 날 때마다 본다.
-추구하는 축구는 무엇인가.
▲깔끔하고 쉬운 플레이다. 옆사람과 공간을 활용하는 섬세하고 샤프한
축구. 나중에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앞으로의 일정과 포부는.
▲13일부터 J리그가 재개돼 이삼일 내에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년
월드컵을 뛰고 난뒤 체력 상태를 보고 은퇴 여부를 결정하겠다. 공부를
많이 해 지도자가 되고 싶다.
◇황선홍 신상명세
▲생년월일=68년7월13일 ▲체격=1m84, 79kg ▲가족관계=부인
정지원씨(31)와 1남 1녀
▲소속팀=용문고-건국대-포항(93년∼98년7월)-세레소
오사카(98년8월∼99년)-수원(2000년1월∼6월)-가시와
레이솔(현재)
▲대표 경력=89년12월
아시안컵-90년 월드컵-90년 북경아시안게임-94년 월드컵-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96년 올림픽-2001컨페더레이션스컵 ▲A매치=89게임
출전, 47골 ▲국내리그=64게임 출전, 31골 ▲J리그=통산 50게임 출전
35득점(올시즌 8게임 4골) ▲취미=골프 ▲좋아하는 음식=찌개류 ▲축구
시작=숭곡초등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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