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솔티」라는 예쁜 이름의 서구식 호텔이
있었다. 연인을 부를 때 가장 다정한 호칭의 네팔 말이라 한다. 그
호텔에 곤야(금옥)라는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스키야키집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피랍돼 일본에 가 살기 시작한 김씨 성의 조선사람으로,
성을 결코 바꾸지 말라는 조상의 유언을 지켜 곤(김)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일본인이다. 그 곤야의 단골손님이 당시 왕세자였던 비렌드라
국왕으로, 한국 등반대 일행이 왔다는 말을 듣고 불러 몇 가지 물었던
일이 기억난다. 일본 유학을 했다는 왕세자는 서툰 일본말을 섞어가며
묻기를, 박정희 정권이 어떻게 군사쿠데타를 성공시켰으며 민심의 동향이
어떠했는가, 그리고 조선왕조의 후예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국가와 백성들이 그들에게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가 등에 대해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입헌군주국이던 네팔은 30년 유지해온 절대왕권이
민주화 물결로 물러나고 국왕이 야당측에 임시정부 조각을 위촉한
시점인지라 그 질문들이 절실한 것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비렌드라 국왕과 왕비를 비롯, 왕족 8명이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은 데
불만을 품은 왕세자의 총기난사로 몰살을 했다. 네팔은 19세기 이래로
라나가의 세도로 꾸려져왔으며, 벼슬자리와 호화주택은 모두 그 집안
것들이다. 1000개의 방이 있다는 아시아 최대의 저택도 라나가의
것이라고 들었다. 이 라나가는 동성끼리의 소생을 성골, 이성여인과의
소생을 진골로 차별해 서로 반목해왔는데, 이번 참사도 결혼하겠다는
예비 왕세자빈과 이를 반대하는 예비 시어머니인 왕비가 같은 라나가
출신이면서 반목해온 사이라서 빚어진 것이라 한다.

네팔 택시들은 예외없이 전면이 호랑이 얼굴이요 몸체도 호피칠을 한 데
예외가 없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택시라 하지 않고 타이거라고 부른다.
불행을 몰아오는 사시를 두려워하고 이를 막아주는 것이
호랑이뿐인 것으로 안 때문이다. 듣기로 비렌드라 국왕의 집무실이나
침실 주변은 아가리 벌린 거대한 박제 호랑이들로 에워싸여 있다던데,
이번 참사를 당하고 보니 왕실의 사시는 100마리 호랑이도 못
막는구나 하는 무상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