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선 3척의 제주도 해협 통과는 북한 측이 우리 당국에 사전 통보 없이 무단으로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작년 6·15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 변화에 따라 북한측이 사전 통보를 했다면 우리 당국이 양해를 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런 절차 없이 의도적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주권침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북한 어선의 영해침범은 종종 있었으나 상선이 침범한 것은 처음이다.

◆ 북한 의도 무엇인가 =정부는 53년 정전협정 이후 그동안 북한 상선이 단 한 번도 제주도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다는 점과, 사전에 우리측과 협의가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군 당국은 우선 북한 상선들의 이번 행동을 의도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화 합참 해상작전과장은 3일 브리핑에서 『북한 령군봉호는 우리 함정과의 교신에서 「상부에서 내린 지시대로 제주해협을 통과하겠다」고 통고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북한 선박은 무선교신을 통해 『김정일 장군님이 개척하신 통로』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측면에서 일부 군 당국자는 북한이 제주 인근 항해를 단축시킬 수 있는, 이른바 「새로운 항로 개척」 「무해통항권(무해통항권) 인정」 등의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군 일각에선 남한과의 대화채널이 열려 있음에도 북한이 사전에 통항 문제를 협의하지 않은 데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우리측의 경계 및 대응태세를 떠보기 위한 정치·군사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만약 북한이 단축 항로를 원했다면 침범하기 전에 우리와 먼저 논의를 했어야 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82년 무해통항권을 규정한 유엔 해양법 협약에 서명, 이를 인정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남한 선박에 대해선 사실상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북 비료지원 선박의 경우도 사전협의를 거쳐 북측 영해 항해를 허용해왔다.

◆ 정부 판단 및 대응 =정부는 이날 오후 열린 긴급 NSC 상임위에서 강경책보다는 북한이 사전통보 등을 할 경우 제주해협 통항허용을 긍정 검토키로 하는 유화책을 택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국방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북한 당국이 앞으로 사전통보 및 허가요청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사실상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6·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른 인도주의적 차원의 조치라는 시각도 있으나, 야당과 보수층의 반발 등 파문을 우려하는 정부 관계자도 없지 않다.
정부 관계자들은 또 북한 상선들의 영해 침범이 계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북한으로선 종전에 제주도 남쪽 공해상으로 우회하던 것보다 300~400마일이 짧아 시간 및 경비절감에 큰 도움이 될 제주해협 항로에 탐을 낼 것이라는 예상이다.

◆ 군 대응 및 조치 =군 당국의 조치와 관련, 당국이 남북 화해분위기를 감안해 북한 선박들에 대해 정선을 명령, 검문하거나 항해를 저지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경고방송 및 감시만을 하는 ‘미온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합참 및 해군 관계자들은 『북한 선박이 우리 해군의 통신검문(무선교신)에 순순히 응해 강한 조치를 취할 빌미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또 「백마강호」와 「령군봉호」 등 2척의 상선은 우리 영해에 들어온 뒤에야 발견돼 감시태세의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이란 군함 등 무장선박이 아니라 상용 등
민간선박이 국가간 이동을 할 때 해당국가들이 자국 영해를 고집하지
않고 자유로운 통행을 허용하는 것으로 국제법상 인정되고 있다. 예컨대
일본 상선이 우리 영해를 통과할 때 이를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평시에 외국선박들이 연안국의 평화 안보 등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자유로운 통항을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의 경우 법적으로 전쟁이 중지된 정전 상태에
있기 때문에 비록 민간선박이라도 서로간에 무해통항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현대 금강산호도 일단 공해상으로 나갔다가 북한 영해로
진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 군은 지금껏 북한 선박에 대해선 민간선박이라도 영해상에 들어오면
합참 작전예규에 따라 퇴거조치를 했으며, 북한의 경우 그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북한 근해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선들을 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납포 억류해와, 적어도 한반도 수역에선 사실상
무해통항권은 인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