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주오구에 있는 스미다 코퍼레이션㈜은 일본 속의 '영어
해방구'다. 작년초 일본 기업중 처음으로 영어를 사내 '제1공용어'로
선포한 이래 각 기업 사원교육 담당자들이 필수적으로 견학오는 '글로벌
성지'가 됐다.
"해외 거래선들은 저를 토머스(Thomas)라고 부르지요." 안내판부터
온통 영어로 쓰여진 본사의 초현대풍 로비에서 홍보 책임자 하타
요시히로씨는 본명과 영어식 별칭이 나란히 적혀있는 사원증을
보여줬다.
사장부터 말단까지 350여 임직원에겐 영어 이름이 있다. 예컨대
야와타 시게유키(49) 사장의 별칭은 '쉬기(Shiggy)'다. 해외
연락이나 이메일 등은 본명보다 영어식 애칭을 쓰는 일이 많다고
'토머스' 씨는 말했다.
지하3층 구내식당. 종업원 체격이 꽤 크다 싶었는데, 역시나 4명 모두
서양인이다. 이들은 음식을 담아주면서 영어로 말을 걸고, 일본인
사원들도 자연스럽게 응답하며 유쾌하게 수다 떤다. 식당내 대형TV에선
CNN이 흘러 나온다. 서양인 종업원은 식당에 배치된 영어 교사다.
인건비가 비싸지만, 영어 자극제가 되고 있다. 네이티브 스피커와
일상적으로 접하게 함으로써 말문을 트이게 하려는 것이다.
1층 외빈 접수대의 안내원도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이다. 외국 손님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인 사원들의 대화상대가 돼 영어 알레르기를
없애주는 것이 더 큰 임무다. 사내 환경을 '영어 모드'로 세팅하기
위한 값비싼 투자다.
제1공용어를 영어로 바꾼다는 스미다의 결정은 46년 회사 역사중 가장
어려운 결단이었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장사하는 글로벌 경영
시대에서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저스틴(Justin)'이란 별칭을 쓰는
인사 책임자 기시 준이치씨는 말했다.
세계 7개국의 공장·자회사와 1만3000명 종업원을 둔 스미다는 과거
외국인 사원들에게 일어를 가르치려 했다. 그러나 현지 젊은이들은
'지역언어'에 불과한 일어를 갈수록 꺼려했고, 우수한 인재 채용이
점차 힘들어졌다. 결국 스미다가 그들에 맞출수 밖에 없었다.
스미다는 현재 모든 보고서와 사내 정보망(인트라넷)을 영어로만
작성하며, 내부 문서도 점차 영어로 바꾸고 있다. 각종 회의에서 일본말
못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영어를 쓴다. 실제 이사 6명중
홍콩 사람이 1명 있기 때문에 이사회 진행은 영어다. 덕분에 가장 고생한
것은 77세 고령에 영어와 씨름해야 했던 창업자 이치로(사장의
부친)씨였다.
회사의 지원은 파격적이다. TOEIC 점수가 500점 이상이거나 영어를
배우려는 의욕이 인정되는 사원에는 연간 30만엔까지 지원해준다. 이
돈으로 학원가건, 해외 단기유학을 가든 자유다.
덕분에 퇴근후 한잔을 즐기던 사원들의 생활리듬은 면학 분위기로
바뀌었고, 뒤늦은 영어 공부에 악전고투해야 했다. 지금은 대부분
'영어음치'에서 벗어났으나, 아무리 다그쳐도 안되는 '자포자기파'가
아직 10%쯤 된다고 기시 씨는 귀띔했다.
영어 장려책은 지금 대부분 일본 기업에서 유행중이다. 그중에서 특히
스미다가 주목받는 것은 하루 아침에 '영어 해방구'임을 선포한 혁명적
발상 때문이다. 배경엔 '영어 후진국'이란 일본의 초조감이 깔려있다.
(박정훈·동경특파원 jh-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