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회사에 다니는 P(42)씨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한 유산균 음료
광고판에 눈길이 갔다. 거기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위염,
위궤양, 위암의 원인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속쓰림의 정도가
수위를 넘었다고 생각한 그는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며칠 후 나온
진단 결과는 만성위염이었다. 담당의사는 헬리코박터균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는 세균치료에 대한 언급은 없이 술·담배를 자제하고,
1~2년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하기만 했다. 그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자신의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영 찜찜했다.
결국 그는 그 유산균음료를 매일 마시게 됐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83년 호주의 와렌과 마샬이라는 사람이
처음 발견했다. 이는 소화기 내과 연구에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균이
만성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암 등 주요 소화기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이 세균은 전 세계인의 약 50%,
한국인의 70%가 감염된 것으로 조사돼 있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주로 위장에 서식하며 음식물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균은
한번 몸 속에 들어오면 평생동안 함께 살아야 한다.
그 광고문구대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위염, 위궤양, 위암의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환자나 조기위암으로 점막절제술을 받은 환자, 위장의 말트림프종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치료를 통해 이 균을 없애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균이 있는 모든 사람이 위궤양, 위암에 걸리지는 않는다. 또 이 균을
반드시 박멸할 필요도 없다. 이 균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한
위염증상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단순 위염의 경우, 이 균을 없애려고
항생제를 쓰면 오히려 내성이 생겨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내시경 검사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발견되면 전문의와 상의해 치료
여부를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옳다. 이 균을 억제한다는 유산균음료는
항생제가 아닌 '식품'으로서 다소 효과는 있겠지만, 균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 고준호·연세드림내과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