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조경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말야, 언젠가 한번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그런 경험 해본 적 없니? 처음 간 장소도 왠지 낯익고 말이야,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좋은 장소가 있고 사람이 있고, 말 한번 나눠보지
못했지만 싫고 거북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잖아…"(130쪽)
생은 반복한다. 기시감의 근원에는 현생 이전의 생이 새겨놓은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경란(32)의 새 장편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문학과지성사)는 '전생 체험'이라는 매혹적인 코드로
존재의 비의를 추적해 들어간다.
영어학원 강사로 혼자 살고 있는 여성 강운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스무 살 때 자신을 낳았던 엄마는 암으로 죽기 직전
조롱하듯 말한다. "네가 태어난 해는 1969년이 아니라 1968년"이라고.
자신을 낳았던 날 조차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아름다웠지만
이기적인 엄마였다. 강운은 이후 '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혼자이면서 둘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
향이에게 최면을 이용한 전생퇴행 요법으로 이름을 날리는 신경정신과
의사 김석희가 집요하게 접근한다. "나와 당신의 전생은 얽혀 있으며 그
생의 비밀을 알아야 현재의 운명을 설명할 수 있다"고 유혹하면서.
사실 '전생체험'으로 존재의 비밀을 풀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퇴행'이다. 아날로그는 향수로만 남은 세상,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서, 과거로 그것도 윤회로 삶을 해석하려 하다니. 하지만
작가는 논리와 이성으로 세워진 이 견고한 성채가 사실은 내적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모순덩어리임을, 과학의 언어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신비의 영역임을, 시적 광휘가 넘치는 문장으로 묘사해 내고 있다. 결국
향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러한 물음은 현생과 전생,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다리를 왕복하면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과 겹쳐지는 것이다.
96년 등단 이후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과 진정한 소통에 대한 탐색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작가는, 그
주제의식을 특유의 섬세하고도 몽환적인 문체로 버무려 내면서 '읽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치수 교수(이화여대)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구체적 관계의 제시를 통해서 느끼게
하는 작가의 능력이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