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재창출’ 등의 내용이 적힌 ‘취임사 초고’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안동수 신임 법무부 장관은 과거에도 석연치 않은 전력으로 몇 차례 구설수에 올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75년 변호사 개업 동기. 한 법조계 인사는 “당시 검찰 내부적으로 진행된 사정 작업에서 안 장관을 포함한 검사 4~5명이 ‘변호사와의 교제’가 문제가 돼 옷을 벗었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 영등포지청 근처에서 변호사개업을 한 안 장관은 ‘싹쓸이 수임’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안 장관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5공 초기인 82년 초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30만달러’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유명 요정 ‘삼청각’ 여주인이 미화 30만달러를 갖고 출국하려다 구속된 이 사건으로 당시 대법원장 비서실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됐고, 서울지검장이 옷을 벗었다.
신군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 전반에 대해 수사를 확대했다. 사건 수임이 많았던 안 장관도 다른 변호사 2~3명과 함께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판검사 골프접대’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안 장관이 인권 변호사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이른바 시국·공안사건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인권변호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 장관측은 80년대 말 MBC방송 파업 당시 변론을 맡는 등 다수의 인권사건을 변호했다고 밝혔다.
중앙고·서울법대를 졸업한 안 장관은 고시 15회에 합격한 후 68년 부산지검 초임 검사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대구·서울지검 영등포지청(현 남부지청) 근무를 거쳐 인천지검 검사를 끝으로 75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안 장관이 정계에 입문한 것은 3당 합당 직후인 1990년 2월, 당시 이기택(리기택)씨가 이끌던 세칭 ‘꼬마 민주당’에 입당하면서였다.
이 당이 91년 김대중 대통령의 신민당과 합당해 「민주당」이 됐고, 안 장관은 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서초을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95년 7월 김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안 장관은 이기택씨와 결별, 민주당에 잔류했다. 15·16대 총선에서는 같은 지역구에서 연거푸 고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