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세종문화회관 회의실에서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와
문학교육'이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국어교과서 편찬의 문제점을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국어교과서를 문학교육자료로만 취급하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교과서는 지식뿐 아니라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당한 규칙을 가르쳐야
한다. 따라서 교과서 제작과정도 합법적이어야 한다. 교과서에
문학작품을 실을 때, 저작권법 제 25조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를 적법성의 근거로 삼는다. 그런데 국어교과서를
살펴보면 저작권법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1학년 국어교과서에 그림책 '심심해서 그랬어'가 실렸다.
원본의 글을 마구 줄이고, 그림은 다른 화가가 그렸다. 어떤 이들은
그림책에서 '글'만 중요하게 여기는지 모르지만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심심해서 그랬어'는
윤구병의 작품이며 동시에 화가 이태수의 작품이다. 그런데 참석자들은
주로 글이 잘려나간 것을 문제삼았다.
일본 교과서에도 이미 출판된 그림책이 실리곤 한다. 미국작가인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Swimmy'도 원작 그대로 실렸다. 일본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한다고 손가락질하지만 그들은 원작을 누더기로 만드는 짓은 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렇게 마구잡이 가위질로 넝마가 된 채 실린
작품이 한두 편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를 두고 한 교과서 집필자는 "어디까지나 어린이들에게 좋은 작품을
많이 읽히려고 한 일입니다. 일부라도 교과서에 실으면 원작도 읽지
않겠어요?" 하고 변명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교과서는 책 만들기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원작을 멋대로 줄이거나
그림책의 그림을 바꾸어 싣는 것은 작품을 훼손하는 일이다.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바르게 살아라' 하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 김은하 / 어린이도서관 ‘가정독서지도’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