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 인물을 모델로 작품을 쓰는 경우 작가는 그 인물의 안을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하는 소설 쓰기가 비교적 편한
것은 작자가 이미 그 '어머니의 속'을 열 달씩이나 살고 나온 때문일
것이다. 반면 성격이 강한 모델일수록 작가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내면 취재가 끝나고 나서도 소설적 상상
공간의 확보에 애를 먹기 십상이다.

필자의 경우 졸작 '당신들의 천국'의 주인공 소록도 병원장 조백헌의
실제 인물인 조창원 원장이 그런 예이다. 1970년대 초반 어느 해 한겨울,
필자가 소록도 병원으로 처음 그를 찾아갔을 때 대령 군복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갓 장년기의 조 원장은 육지에서 못 살고 쫓겨들어온
한센씨병(나병) 환자들을 위한 섬 낙토 건설에 온 삶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래 그 취재와 소설 공간의 확보에 적지 않게 애를 먹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렇듯 강직한 성격을 지닌 모델 덕분에 졸작
'당신들의 천국'은 이후 그 조 원장의 실제 삶으로 계속 보이지 않는
후편이 씌어져 온 셈이었고, 그로 하여 작품의 마지막 완성에 이른 흔치
않은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그 취재 이후 필자는 작품을 쓰면서 주인공 조백헌 원장의
순교자적 봉사와 사랑의 삶을 부각시킴과 함께, 그의 과단성과 굳건한
신념이 자칫 자기 도취의 독선적 낙원 건설의 길로 치닫게 될 위험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주인공 조백헌 원장에 대한 그같은 주문은
소설 이후의 실재 모델 조창원 원장의 현실적 삶의 숙제로 넘겨진
셈이었고, 거기에서 소설의 예언적 덕목이 성패를 달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모델이 있는 소설을 쓰고 나면 대개 그렇듯이, 필자 역시도 그
강한 모델의 성격에다 비판적 주문을 보탠 것이 그의 삶에 대한 부당한
간섭처럼 여겨져 작품 출간 이후 20여년 동안 가급적 그와의 만남이나
소식을 삼가고 지냈다. 그러면서도 그가 소록도 병원을 떠나 강원도
탄광촌 정선 병원에서 십여년(80~90)간 진폐증 환자들의 치료에 전념한
일이나, 정년퇴직 이후엔 다시 대전의 '선병원'으로 봉사의 자리를
옮겨가 온 나라의 가난하고 의지없는 말기 진폐증 환자들의 종생을
돌봐온 과정에 계속 관심을 기울여 왔음은 물론이다. 소설 속의 조백헌의
운명과 삶의 성패는 이제 소설 밖의 조창원의 몫(책임)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 1998년 그는 고희를 지나 쓴 자전적 에세이 집 '허허
나이롱 의사 외길도 제 길인걸요'를 출간하여 내게 그 한 권을
보내왔다. 또한 작년 가을에는 '소록도의 빛과 어둠'전(1995)에 이어
탄광촌의 삶과 애환을 그린 두 번째 그림 전시회 '검은 영혼과의
만남'전의 소식을 알려왔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전시회도 찾아가 그의
그림과 함께 26년 만에 비로소 그를 다시 만나 보고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그는 내가 소설 속에서 꿈꿨던 '자유와 사랑의
성자적 실천자'로 늙어 있었다. 십자가와 부처님과 우리 무당춤이 검은
죽음들을 진혼하고 있는 자신의 그림 앞에서 그는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저 세상으로 보낸 환자는 5백여 명을 헤아리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죽음 앞에서 마지막 기원을 듣고, 유족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 왔소. 나는 의사로서 육신의 병만을 돌볼 수가 없었소.
그들의 간망을 이 그림으로 그려 그들의 영혼도 함께 씻겨 보내야
했소."

그는 살아서 육신의 병을 돌보고 환자가 죽어서는 그 영혼을 돌보는
사제의 역할도 함께 감당해온 것이었다. 이를 두고 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필자에게 "앞길이 훤했던 의사 조창원의 생애에 당신의 소설이 참 못할
짓을 했다"고 짐짓 허물하는 체했지만, 그의 세속적 삶의 성취가 어찌
됐든, 모델의 실제 삶이 작품의 보이지 않는 속편을 힘있게 써 주고 그로
하여 소설 속의 꿈이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빛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듯
소설과 모델간의 대화 속에 작품이 계속 완성되어 갈 수 있다면, 그런
문학은 참으로 할 만한 노릇이 아닐 것인가.

( 이청준·소설가·순천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