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항의, 자결한 민영환(1861~1905) 선생이
대한제국 초대 러시아 공사였음을 입증하는 문서가 러시아 외무부
문서보관소에서 처음 발견됐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이인호) 지원으로 모스크바에서 한·러관계 사료를 수집하고
있는 박종효(모스크바대·한러관계사) 교수는 민영환을 페테르부르크
상주 러시아 공사로 임명하는 임명장과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에게
보내는 고종 황제의 친서(이상 1897년 3월 22일자),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대한제국 사절단이 제출한 외교관 명단(1897년 5월 14일) 등을
러시아 외무부 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내 16일 공개했다.

지금까지는 1900년 당시 러시아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부임했다가 한일병합 직후인 1911년 자살한 이범진(리범진·1852~1911)
공사가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초대 공사라는 것이 정설로 돼 있었다.
민영환은 러시아 공사로 임명됐으나 현지에 부임하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었다.

국제교류재단에서 확인한 고종 친서는 고종이 을미사변 이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가(아관파천) 1년여 만에 경운궁(오늘날 덕수궁)으로
돌아온 지 한달 만에 작성한 것이다. 환궁 경위와 함께 그간 편의를
제공한 러시아 황제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페테르부르크 상주
전권공사 민영환 편에 친서를 보낸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민영환 공사가
러시아 외무부에 제출한 불어 공문(1897년 5월 14일자)에는 민영환 공사,
민상호·민영찬·노승비 1등 서기관 등 8명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부임한 것으로 돼 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민영환의
러시아 공사 부임은 아관파천을 끝내고 환궁한 고종 당시 한·러관계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영환 공사는 러시아에 부임, 공사관을 설치한 뒤 길어야 2주 정도
근무한 후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민영환이 러시아 초대
공사로 부임한 것이 공식 문서에 의해 확인된 만큼 이에 관한 역사서나
백과사전 등의 기술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모스크바=황성준특파원 sjhwang@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