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읽은 헤르만 헷세의 '싯달타'는 인생이 무엇이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이어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다윈의 생존 경쟁과 달리 사회를 보는 눈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계몽주의적 전통에 젖어 사회 개혁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사회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회학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처방을 얻어내기 전에, 필요한 진단을
하는 일에서부터 한계에 부딪쳤다. 한국 사회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고려를 당시 사회학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1966년 덴마크와 영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문화인류학과 민속학을
공부해서 사회학을 보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때 영국에서 막
출판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이란 책을 처음 소개받았다.
그렇지만 이런 만남이 나의 연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 해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하와이 대학에 인류학을
공부하러 갔을 때 예일 대학에서 온 데이비드 아이드 교수로부터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접하게 되었다.
인간 사고의 이원적 분류체계부터 친족과 사회조직, 신화에 이르는 그의
연구는 동아시아 문화 전통에 대한 논의처럼 들렸다. 또 하와이 대학
동서문화연구원의 동양학 관계 연구 업적들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둘을 연결하여 동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구조주의적 접근으로 내가
처음 시도한 것이 '중국 세계관의 구조적 원리'를 음양적 인지 구조로
풀이한 것이다.
마침 미국 인류학회의 연차 대회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에 대한 3년
연속 특별분과에 발표할 논문을 공모한다기에 이 논문을 보냈더니
채택되어 1971년 300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가 끝나고 토론자로 나온 스텐리 다이야몬드교수는 내 입장이
레비-스트로스를 찬성하는 것인지 반대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나는 "나는 동아시아에서 온 '바바리안'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서양의 '바바리안'이 바로
레비-스트로스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옆 자리에는 당시 세계 인류학계를
주름잡던 데비드 슈나이드·작크 마뀌·이노 로시·루이 듀몽 등이 함께
했는데 이들이 나를 격려해 주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재직하고 있을 때 나는 레비-스트로스
교수와 데이비드 아이드 교수를 한국에 초청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정문연 세미나의 발표에서 유교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에서
구조주의적 사고방식의 훌륭한 예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우리의 문화적 전통 속에는 이러한 구조주의적 사고가
무의식 차원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보고 있다.
( 인제대 교수·문화인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