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음 그대여.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때쯤 나는 통영을 떠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후했을 때 당신은 나의 온몸에서 푸른
비늘처럼 부서져 내리는 저 오월 바다의 물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그대에게 글을 쓰고 있는 이 곳 충무관광호텔 찻집 주변은
강마을처럼이나 한가하기만 합니다. 이따금 하얀 포말을 만들며 잔잔히
미끄러지는 작은 배와 눈 앞의 유리창을 스쳐 날아가는 갈매기를
제외하고 나면 오직 눈부신 고요뿐입니다. 누구라도 한나절쯤만 저 햇빛
녹아 흘러 시시각각 미묘한 색감의 변화를 일으키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화가가 될 것만 같습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숫제 온몸이 빨려
들것만 같은 저 푸른 물빛 앞에서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길래 파도가 철썩이는 호텔 앞 송림 사이를 거닐며 나는
비로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고 격한 그리움을 토해냈던 청마시의 한
가닥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시와 사랑과 그리움과 갈망이 물 되어
섞여 흐르는 그 느낌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통영의 바다와 햇빛과
바람 속에는 온통 그리움이 갯내음처럼 묻어 있습니다.
교과서 탓이었겠지만, 나는 그간 청마를 강인한 의지의 생명 노래를
불렀던 딱딱한 시인으로만 알았습니다. 그이의 '깃발'이 육사의
'광야'처럼 거친 호흡의 남성시로 먼저 다가왔기에 더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남쪽 바닷가 도시에 내려와 그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던 우체국과 산책하던 거리와 문학관을 거닐며, 나는 비로소
그이가 교과서 속의 박제된 생명파 시인이기 이전에 이루지 못할 사랑의
슬프고 애달픔에 가슴 떨었던 한 남정네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이의
사랑시마다에는 황소울음 같은 힘과 함께 자기 희생과 너그러움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 진종일 헛되어 나의 마음은 /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그렇게 그이는 이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바람 불고 비오고 눈 내리는 그
숱한 날들의 아침과 저녁에 손을 뻗치고 뻗쳐도 닿지 않은 사랑을 향해
시와 편지의 구분마저 무너져 내려버린 수천통의 글을 썼던 것입니다.
무려 스무해가 넘도록.
해지자 날 흐리더니 / 너 그리움처럼 또 비내린다 /문 걸고 / 등 앞에
앉으면 / 나를 안고도 남는 너의 애정
(밤비)
나의 지음이여.
대저 그리움이란,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이길래 시인을 그토록 긴
세월동안 놓아주지 않고 애타고 목마르게 했을까요.
그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곤 했다는 중앙동 큰 길 뒤의
우체국 앞에는 펼쳐진 책 모양의 돌 위에 저 유명한 '행복'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북포루 누각이 올려다 보이는 여황산 아래 우체국 앞에서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청마풍의 고고하고도 성결한 사랑법에 새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한 여인에 대한 이런 정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었길래 조국과 민족과 시원 같은 보다 넓고 큰 추상의 대상 또한
끌어안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청마의 '생명시'와
'사랑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닌 하나였습니다.
처음부터 시인의 사랑에는 소유와 이기의 발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끝없는 기다림과 갈망은 있었지만 원망과 섭섭함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육체로 함께 있을 수 없는 고독과 고통마저도 그이는 깊고
푸르른 시어들로 승화시켰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슬픔이 '멍인양
목줄기에 맺히어, 소리도 소리로 낼 수 없'는 한 마리 '학'이라고
했습니다. 그 운명적 사랑 앞에서, 울 수도 없고 날 수도 없이
'밤서리와 별빛을 이고' 서서 갈대처럼 말라가는 학이라고 했습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백번 죽었다 깨어도 그런 영혼의 깊이가 느껴지는
사랑을 이해 못할 것이라고, 청마문학관의 계단을 오르며 문인인 고동주
시장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홀로 겪어 내어야 하는 절절한 고독이고 아픔입니다. 청마야말로
생살 베어내는 것 같은 그 사랑의 고독과 아픔을 당해내며 시로 엮고
떠나간 진정한 '생명파'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독한 산정을
밤마다 홀로' 걸었던 청마는 이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향의
언덕배기에서 문학적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청마문학관에 기울인 고
시장의 열정에 대한 한 시청 직원(김순철씨)의 세세한 설명이
아니라하더라도 청마의 사랑과 문학을 고이 담아낸 문학관은 이제 문예
통영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랑도 육신의 목숨도 놓아야 할 시간이 다가 왔음을 예감했을
때, 시인은 생애를 걸었던 자신의 사랑을 '별'이라고 이름 붙여 떠나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별'을 향해 이렇게 마지막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슴을 저미는 쓰라림에 / 너도 말없고 나도 말없고 / 마지막 이별을
견디던 그날 밤 / 옆 개울물에 무심히 빛나던 별 하나!
그 별 하나이 / 젊음도 가고 정열도 다 간 이제 / 뜻않이도 또렷이 /
또렷이 살아나―
세월은 흘러가도 / 머리칼은 희어가도 / 말끄러미 말끄러미 / 무덤가까지
따라올 그 별 하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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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거리와 청마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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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파 시인인 청마 유치환(1908~1967)이 즐겨 걸었던
중앙동 옛 문화유치원에서 통영우체국까지의 200여m를 이른다.
청마의 시가 낭송되고 있는 청마문학관은 통영시가 문예 통영의
기치를 걸고 4년여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우리나라 문학관의
한 전범이 되고 있다.청마의 시집과 산문집,수상집과 서간집 및
사진 자료 등을 폭넓게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