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수 때 일이다. 텍사스주 휴스턴 대학에서 주중에는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가까운 도시로 관광하곤 했다. 어느 날 이웃에 살던 친구가
휴스턴에 있는 아스트라돔에서 열리는 사이클 경기 입장권을 구했다며
부부동반으로 구경가자고 제의했다.

경기 당일 우리는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친구부부와 함께 출발했다. 보통
때는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차들이 막히지 않는데, 그날은 실내경기장
진입로 수㎞ 전부터 차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답답해서 무심코 친구에게
갓길로 가자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갓길로 가는 일부 동양인
때문에 동양사람 전체가 욕을 먹는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민망해서 차장으로 바깥만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차량 몇 대가 갓길로
달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친구의 말을 확인시켜 주듯, 갓길로
달리는 차는 어김없이 동양계 얼굴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추한 줄도 모르고 신나게 갓길을 달리지만 그로 인해 동양인들이
받게 되는 수모를 알 리가 없는 듯 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경기를 관람하면서도 내내 갓길을 질주하던 사람들과
친구의 말이 교차됐다. 마음 속으로 그 사람들이 한국인이 아니기를
바랐다.

(노영구·54·강원도 강릉시 용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