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망명신청을 준비중인 탈북자 김순희씨 인터뷰를 읽노라면 '운명'
'인생유전''여자의 일생'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지난 7년여에
걸친 그의 인생항로는 한편의 재난영화를 보듯 아슬아슬하고 극적인
반전의 연속이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필리핀을 거쳐 멕시코로, 미국
국경을 넘다 체포되기까지의 역정은 그야말로 서바이벌게임을 압도한다.

짤막한 기사지만 그 안에는 김씨가 처했던 현실과 역경속에서
살아남은 지혜, 그리고 자유와 부에 대한 꿈이 녹아있다. 우선 탈북
동기가 남다르다. 가난도 지긋지긋했지만 바람 피우는 남편과 이혼하려
해도 합의해주지 않아 아들을 등에 태워 두만강 얼음물을 건넜다는
것이다. 북한사회에서도 여성들의 자아찾기가 시작됐는지는 몰라도
대단한 결단력이 아닐 수 없다.

연변에 숨어살 때 탈북자 두 명이 '코가 꿰어' 북한으로 끌려가는
것을 실제로 목격했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수갑이나 포승이라면
몰라도 소도 아닌 사람의 코를 어떻게 꿰며 왜 그런 짓을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극도의 불안상황에서도 바느질을 해서 돈을
모았다는 진술도 김씨의 강한 생활력을 드러낸다. 멕시코에서도
봉제공장에서 일한 그는 미국에 살게 되면 바느질을 생계수단으로
삼겠다고 했다.

김순희씨 인터뷰에서 우리가 놀란 사실은 가까운 한국을 마다하고
험난한 미국을 택해 모험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그는 "연변에서
일하면서 눈이 높아져 미국을 동경하게 됐다"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한국행은 좋지않다"는 주변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자
혼자'나 'IMF 위기 이후'도 구실일 수는 있지만 탈북자들에게
한국은 더이상 동경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새겨들어야 한다.

중국동포와 탈북자들로부터도 외면받는 나라에서 남북교류와 화해는
도대체 무엇인가. 생사의 고비를 넘어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
보호시설에서부터 불만을 토로한다면 대책이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김순희씨가 미국에 살고싶은 이유는 자유롭고 잘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노심초사하는 그에게 미국은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해 망명을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