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라는 젊은 한문학자가 있다. 나는 그를 얼핏 스치듯
만나보았을 뿐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와 나와의 인연은 참으로 오래 된
것만 같다. '소화시평'이라고, 예전에 그가 번역한 조선시대
홍만종의 시화집을 뜻깊게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 까닭이다.
시화집이란 오늘날의 비평집에 가까운데 형식은 더 분방하되
간결하고 뜻은 더 엄정하다. 이후로도 나는 그 한문학자의 저술과 번역을
부지런히 찾아 읽었으니 아마도 나는 그의 흔치 않은 애독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최근에 그가 간행한 '윤춘년과 시화문화'(윤춘년과
시화문화ㆍ소명출판사)를 인상깊게 읽은 일이 생각난다. 그 윤춘년이라는
조선 중기 문인의 생애가 매우 흥미로웠던 탓이다. 후세의 비평자들에
의하면 그는 권력에 빌붙어 오랫동안 부와 지위를 누리고 남을 탄핵하는
데까지 앞장을 선 소인이었다. 또한 그는 시작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처럼 행세하곤 하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그는 김시습 등의
문집을 간행하여 역사에 남겼고, 중국의 시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당대의 시론을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그로써 동북아시아 비평적 교류의
중요한 매개자가 되었다. 또한 그에 대한 평가도 사람에 따라 상반된
면이 있었다.

그를 새롭게 설명하고 해석한 안대회의 글을 읽고 생각했다. 문학인이
시대를 헤쳐나가는 일은 어렵다. 시대의 주조나 유행과 거리를
두고 자기를 지키는 문학자, 현실적 힘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문학자는
일급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윤춘년과 같은 삶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더구나 그런 이가 문학이라는 명목 아래 당대인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러나 힘과 제도의 바깥에 처한다 해서 곧 의미 있는 문학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한 사람의 문학자가 어느 한 방면에서나마 제 가치를
육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옛 책을 오늘에 읽음은 오늘의 책을 읽는 것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다.

( 방민호ㆍ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