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옮기는 상황은 석달을 넘게 끌어오고 있는 당국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기에
필자의 경우를 1인칭으로 전한다)

나는 지난 9일 H증권회사로부터 「김대중님의 금융거래정보 제공사실
통보」라는 우편물을 받았다. 이 자료에 의하면 H증권은 지난 3월 5일
서울지방국세청의 요구에 따라 96년부터 2001년 3월
5일까지(5년3개월간)의 나의 금융거래상황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H증권과
거래한 사실이 없는 나로서는 즉각 H증권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것인가를 물었다. 얼마 후 그 회사의 간부가 전화를 걸어 내 경우는
『거래사실이 없음을 국세청에 통보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러한 사실은 처음엔 나를 어처구니없게 만들더니 마침내는 화가 나게
했다. 거래사실이 전혀 없는 회사까지 금융정보를 추적한 것으로 미루어
당국은 모든 증권회사와 모든 은행에 「이 사람의 계좌나 거래사실을
보고하라」고 했을 개연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다음날 거래실적이 신용카드 결제용뿐인 모 은행으로부터도
「금융정보 제공사실 통보서」가 날아왔다.

상식적으로 세무조사의 과정에서 관련자의 계좌나 금융거래정보를
추적하는 것은 어떤 혐의나 꼬투리가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 경우를 볼 때 어떤 비리나 혐의가 있어 뒤지는 것이 아니라
「뭐 잡을 꺼리가 없나」하는 식의 「모조리 뒤지기」 또는 투망식
조사를 했던 셈이다. 다시 말해 이런 조사행태는 어떤 대상인물과 목표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이들 통보자료에 의하면 국세청이 나의 금융정보를 요구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그러나 국세청은 당시 각 금융기관에 보낸 협조의뢰서에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 시행령 12조2항3호에 의거해
당사자에게 이같은 정보 제공사실 통보를 5월 7일까지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5월 7일은 애당초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종결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조사기간은 다시 6월 19일까지로 연장됐지만)

국세청이 조사사실을 당사자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금융기관에 요청한
근거인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법 12조2항3호는 계좌추적 사실이
알려지면 당사자가 『질문·조사 등의 행정절차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과도하게 지연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를 차단하기 위한 예외적
조항이다. 그런데 전문인도 아닌 신문종사자가 이미 전산화된 기록을
어떻게 무슨 수로 조사를 방해하고 지연시킬 수 있단 말인가. 기업을
경영하는 직업이 아닌 신문기자직의 상속·증여세 탈루조사가 개인의
예적금비밀을 보호하는 법의 기본정신을 지킬 수 없을 만큼 사안이
급박하고 규모가 엄청나고 성격이 악질이어서 본인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인가?

이런 사실들을 종합할 때 지금의 세무조사는 결국 신문에 직접 글을 써서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과 다른 견해를 밝혀온 논설기자 또는 신문사
간부들의 뒷면과 밑바닥을 들여다 보고 거기서 그들을 법적 도덕적으로
훼손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심지어 정부의 세무조사가 신문사 소유자의 개인비리 또는 법인의
탈세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것이 그 신문사에서 글을
쓰는 기자들에게 간접적인 무형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세상은 바로 권력의 이런 행위, 이런
수법, 이런 인식의 결과를 다름 아닌 언론탄압이요 언론자유 억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