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서편 숲 속에 습례정이라는 가로간판을 단 팔각정을 볼 수 있다.
중국 천자를 보기 전에 그 까다로운 절차와 예의를 익히기 위한 사대의례
연습장이다. 안을 들여다보면 「황제만세만만세」라 쓰인 푯말을 상석에
앉혀 황제를 대신케 했으며 그 정자 앞에는 천자의 정전처럼 품계석을
세워놓았다. 조선 사신이 오면 맨 끝인 구품석에 서서 나무 푯말을 향해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적인 삼궤구고의 예를
연습시킨다. 인사란 대등할 때 양편 자세가 평등하고, 굴욕적일 때
높낮이가 벌어진다. 삼궤구고는 그 높낮이를 최대로 벌려놓은 굴욕
인사다. 곧 의례라는 탈을 쓴 신복 확인이요, 종속을 다지는 힘 있는
자의 횡포다.

영국의 외교사절 매카트니는 열하로 피서가 있는 건륭제를 뵈러 갔었는데
세상 넓은지 모르고 이 사절에게 삼궤구고의 예를 요구하였다.
매카트니는 비록 무역개선은 실패했을망정 끝내 이 굴욕적인 예를
거부하여 나라의 체면과 주체성을 지켜냈다. 수없이 많은 역대 한국
사신들이 이 굴욕적인 절을 강요받았으면서 이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비통이나 개탄의 심정을 담은 글마저도 찾아볼 수가 없다.

중국에 가 공식 나들이를 하는데 담당관리는 물론 문지기나 가마꾼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신 일행을 얕보아 뒷돈 요구하는 것이 관례가 돼
있었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조선 종이와 청심환이기에 이것들이
건네져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박지원은「열하일기」에 한국사신의 질을
나누고 있는데 명나라를 숭상하여 오랑캐 지배의 청나라를 저주하고
상종을 하지 않음을 상등 사신이라 했다. 이 상등 사신이 숭상하는
명나라였다면 그 사대굴욕이 얼마만 했을까. 그것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문헌이 발견되었다. 이덕형의 명나라 사행기록인「죽천일기」가
그것이다. 중국관리를 만나는데 길바닥에 엎드려 손을 비비며 고관
만나기를 애원하고, 관청에 들면 쫓겨나지 않으려고 섬돌을 붙들고
늘어져 적선하라고 읍소를 했다 하니 이만한 굴욕적인 외교로 한국역사가
꾸려져 왔던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난다. 일본 교과서의 왜곡이 이 같은
역사의 되풀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