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서울 이태원관광특구 내 외환은행 앞에서 중국인 관광객
4명이 두리번거리고 있다. 일행 중 한 명인 판원니에씨는 "보세
가게를 찾고 있는데 한자로 된 안내표지판이 하나도 없어 15분 이상
헤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태원에 있는 2개의 관광안내판에는
한자가 병기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변변한 중국어 안내지도조차 없어
이들은 마치 미로 속에 빠진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강남의 한 한식집에서 만난 한 중국인 관광객은 "음식점에 가도 메뉴에
한자가 없어 가이드가 시킨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며 "수시로 차를
마시는 습관이 있는 중국인들에게 냉수만 가져다 준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 수는 98년 이후 매년 40% 이상씩 늘고 있지만,
'중국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인프라'는 거의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올해에만 55만여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
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누르고 일본에 이은 '한국 방문객 2위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5월 1일부터 7일까지 노동절 연휴를 맞아 최대
2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몰려든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중 상당수가
"다시는 오지 않겠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한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은 관광하기에 너무 불편한 나라"라며 "한국
관광 경험이 있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은 '볼 것, 먹을 것, 살 것이
없는 3무의 나라'라는 말들을 한다"고 소개했다. 서울시를 포함한
주요 도시 지도나, 주요 지역 안내도가 워낙 부족한 데다, 그나마
오기투성이다. 올해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문화관광부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회'가 내놓은 중국어판 한국 안내책자마저
잘못된 표기가 많아 원성을 샀을 정도다.
중국 관광객 수 늘리기를 위해 '싸구려 경쟁'에 나선 관광 업계도
문제다. 상하이에서 온 리우빈(30)씨는 "계약조건에 호텔이
'별4개'라고만 돼 있어 서울 시내에 있는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숙소가 인천이었다"고 말했다. A여행사 안모 차장은 "중국인들은 싼
값에 여행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에는 중·저가의 호텔이 없어
중국인들은 경기도나 서울 변두리에 숙소를 잡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인 여행 상품 내용도 문제다. 세계 최고·최대를 자랑하는
고궁을 갖고 있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서울시내 고궁 견학 일정을
중심으로 짜여진 관광 상품을 고집해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정동창(40) 경원대 관광과 교수는 "무한한 중국 관광시장을
겨냥해 숙박시설 확충, 한자 관광안내판 설치, 통역요원 배치 등 관광
인프라를 빨리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