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26)=젊은이의 재산이 패기라면 나이 든 쪽의 무기는
노련미다. 이 두 가지는 대칭 개념이다. 노장들은 산이라도 뽑을 듯한
젊음의 예봉에 힘없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젊은이의 경험 부족을
꾸짖으며 고지에 늠연히 선착하기도 한다.

지난 보에서 흑은 지나친 자신감으로 실속, 그 간의 우세를 다
까먹었다. 대개 이런 상황이 되면 한 살이라도 많은 쪽의 승산이
높아지는 법. 검토실이 이 무렵 이창호의 승리를 점치기 시작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둘은 여덟 살이나 차이났고, 이세돌은 만 18세에도
미달한 홍안 소년이었다.

실제로 백 112의 쌍점으로 적진을 가르고 나와선 흑이 난처해진 모습.
그런데 여기서부터 믿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웬만한 기사같으면
1시간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 승부처에서, 흑이 113 이후 119까지
노타임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 자신만만한 손길에 천하의 이창호가
흔들렸다.

120이 치명적 악수. 참고도였으면 흑이 헤어나기 힘들었다. 백 15 이후
이 싸움은 백의 선수 빅이고, A에 막아 끝난 바둑이었다. '돌 부처'
이창호가 14분이나 숙고하고도 이를 놓치고 있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126의 단수는 당연해 보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