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 맬컴 맥라렌이 펑크밴드‘섹스 피스톨스 ’와 펑크 패션 붐을 일궈낸 ‘펑크 혁명의 산실(産室)’인 런던 시내 킹즈 로드 430번지. <br><a href=mailto:krlee@chosun.com>/이기룡기자 <

## 서구문화 강타한 ‘백색 폭동’ 진앙지 ##


패션가로 유명하던 런던 시내 남쪽 '킹즈 로드'. 동쪽 끝으로 활처럼
휘어지는 길가에 '430번지' 3층 건물이 나왔다. 검은 외벽과 대비되는
격자무늬창. '월즈 엔드'란 간판 아래로 1층 전면을 장식한 대형
시계가 눈길을 잡았다. 1970년대 후반 서구 세계를 경악시킨 '런던
펑크(Punk)혁명'의 진앙인 '섹스(SEX)'가 이름만 바뀐 채
남아있었다.

1975년 킹즈 로드 430번지에 '섹스'란 부티크가 문을 열었다. 신세대
입맛을 겨냥한 파격적 패션과 음악을 구상하던 사업가 말콤 맥라렌의
교두보였다. 어느날 불량기 있어 보이는 청년이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섰다. '자니 로튼'으로 록역사에 기록되는 존 리든이었다. 당대
최고 밴드 '핑크 플로이드' 로고에 '증오한다(I HATE)'는 낙서를
덧칠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맥라렌은 리든의 반항적 매력을 놓치지
않았다. 즉석에서 노래를 시켜보곤 미리 뽑았던 스티브 존스(기타) 글렌
매틀록(베이스) 폴 쿡(드럼)과 묶어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란
이름으로 데뷔시켰다. '하얀(백인) 폭동'으로 불리는 '펑크 혁명'의
불씨가 당겨지는 순간이었다.

'월즈 엔드' 점원은 "가게 이름과 주인은 바뀌었지만, 펑크와 관련된
역사 때문에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부티크"라고 자랑했다. 섹스
피스톨즈가 탄생한 '섹스'가 있던 곳 맞느냐고 묻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의 젊은 펑크 매니아들이 많단다. 5~6평 쯤 되는 좁은 가게 안엔
갖가지 여성 옷과 장신구들이 빼곡했다.

우악스러운 사운드와 누더기 같은 복장, 색색깔 물들이고 닭볏처럼
기괴하게 깎은 머리, 쇠사슬 같은 장신구로 상징되는 '반항 음악'
펑크는 원래 미국에서 시작됐다. 거대 음반사들과 언론의 시장 독점과
극단적 상업화에 불만을 품은 록뮤지션들은 '로큰롤의 기본'으로
회귀하는 원초적이고 단순한 사운드를 추구했다.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거쳐 라몬즈, 패티 스미스 등이 미국 뉴욕 보워리
'CBGB' 클럽을 무대로 실험을 했다.

그러나 '혁명'의 빅뱅은 이듬해 영국에서 섹스 피스톨즈가 폭발시켰다.
영국이 IMF체제로 절망에 빠졌던 당시 섹스 피스톨즈는 TV에서 욕설을
내뱉어 파문을 일으켰고, 1977년 왕실을 난도질한 싱글 '갓 세이브 더
퀸'으로 '신성 모독'도 서슴치 않았다. 런던 뒷골목을 방황하던
노동계급 젊은이들은 종교 군주제 가족제도 자본주의 방송국 음반사 등
모든 질서를 조롱하는 '부정의 음악'에 열광했다.

평론가 폴 롤랜드는 "상업적 기회를 정확히 짚은 말콤 맥라렌이란
사업가가 없었다면 뉴욕의 '컬트 음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란
게 펑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미국 록밴드 '뉴욕 돌스' 매니저
경험이 있던 맥라렌이 치밀한 기획으로 멤버를 뽑고 다듬어 내놓은
'상품'이 바로 섹스 비스톨즈였다. 하지만 그들은 일단 세상에
태어나자 창조자의 손을 벗어나 엄청난 '파괴'로 록음악사의 물줄기를
바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었다.

런던 중심가에선 뜻밖에 펑크를 볼 곳이 없었다. 클럽마다 재즈 펑키
리듬앤블루스 같은 '말랑한' 공연을 걸고 있었다. 북쪽 캠든 타운까지
가서 찾은 '더블린 캐슬'. 스탠드바 뒤켠 문을 열자 기타 굉음이
달려들었다. 허름한 10여평 공간은 60여명의 젊은 관객들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했다. 단순하면서도 통렬한 기타 리프와 드럼. MOT, 로데오,
인터내셔널 제트세트 등 3시간여 릴레이 공연을 펼친 세 인디 밴드들은
로큰롤 글램 펑크를 뒤섞어 연주했다. 무대를 내려온 MOT 멤버에게 왜
펑크만 하지 않느냐고 묻자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옛날 펑크를
지금 똑같이 하는 건 의미가 없다. 펑크는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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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란…
아마추어리듬 - 독창성 주장
90년대 인디문화 밑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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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펑크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아마추어리즘과 '스스로
배우라'는 독립성을 모토로 엘리트 뮤지션들에 의해 점령된 록음악계를
질타했다. 레드 제플린, 엘튼 존, 핑크 플로이드, 퀸 등 내로라 하는
당대 스타들이 그들의 '처형' 리스트에 올랐다.

펑크 밴드들은 기본 3코드, 그것을 반복하는 '미니멀리즘'과
'원시성'으로 화려한 화음-연주력을 경쟁하던 기성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조롱했다. 때문에 '아마추어 음악'이라는 혹독한
비난도 받았다. 록계를 경악시킨 펑크 혁명의 생명은 겨우 2~3년에
그쳤지만, 이후 인디록 스래시메탈 얼터너티브록 테크노 하드코어 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초 얼터너티브 록을 퍼뜨린 그룹 너바나
음악도 펑크였다. 1990년대 중반엔 그린 데이와 오프스프링 같은 '뉴
펑크' 그룹도 출현했다.

국내에선 헤비메탈에 경도된 록음악계 전통 탓에 펑크를 '수준낮은
록'으로 경시했다. 너바나와 그린 데이의 영향으로 1995년부터 급속히
퍼져 인디문화 형성에 밑거름이 됐다. 방송 도중 카메라에 침을 뱉어
파문을 일으켰던 삐삐밴드가 펑크를 실험했고, 인디 출신 크라잉너트는
인기 그룹 반열에 올랐다. '스스로 하라'는 'DIY(Do It Yourself)'
모토가 신세대 광고 카피로 유행하고 원색 염색머리가 늘어난 것도
펑크가 미친 영향이다. ( 임진모 팝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