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회화론’과 ‘한문학’의 가르침 ##


소설 쓰기 공부를 하다 보면 정통적 문예 이론 이외에 미술이나 음악
혹은 한문학과 같은 다른 장르의 예술론에서 도움을 얻을 때가 적지
않다.

필자의 경우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고 동주 이용희 선생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이라는 화론집이다. 나는 이 책의 첫 원고의
일부를 1970년대 초반 당시의 월간 잡지 '아세아'지 연재 시에 처음
접한 뒤, 몇 년 뒤엔 '한국회화소사'라는 문고판 책으로,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선 도판과 화론이 대폭 증보된 '우리나라의 옛
그림'(학고재 판)이라는 새 책으로 적어도 5번 이상쯤 읽은 것 같다.
그것은 물론 저자의 전공 분야(국제정치학) 못지 않은 광범한 미술지식과
깊은 감상안을 빌어 고대로부터 조선조 말기에 이르기까지 망라한 우리
그림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좀 넓혀보고자 함에서였다. 하지만 그 책을
여러번씩 되풀이 읽은 것은 그보다 그의 그림 이야기 전개와 작품 감상
및 평가의 과정이 그대로 매우 유익한 문학론으로 읽힌 때문이었다.
예술의 자율성과 타율성에 매우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이는 책중의
'장면과 화면'에 대한 논의 한 가지만 해도 명백히 그런 시사를 받고
남을 만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산수의 공소성을 넘어 우리 산수의
실제를 그리는 진경산수(그것은 물론 우리 산수뿐 아니라 삶과
풍정을 모두 포함한다)와 도저한 사경정신을 앞세운 저자의 일관된
감상법과 통찰력은 그 자체로 당연히 현대 문학의 사실주의 정신에
밀접히 상응한다. 그래 나는 그 책을 한 문학 동료에게 권했던 바, 그도
같은 소견이라며 이번에는 컬러 도판을 사용한 같은 저자의 다른 호화판
책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시공사 판)을 답례로 구해 보내왔다.

이와는 좀 다르게, 소설 창작 과정에서 지나친 표현의 집착(자기 말과
생각의 덫에 빠지지는 일)보다 절제와 함축성의 덕목을 가르쳐 준 것은
우리 한문학이었다. 어렸을 적 이삼 년 서당 글읽기 공부밖에 없는 나는
한문 해독력이 모자라 더러 조각글이나 번역문 정도를 곁눈질해 오던
터에, 1994년부터 '현대시학'지에 연재(뒷날 '솔' 출판사에서
'한시미학산책'이라는 책제의 단행본으로 출판됨)되기 시작한
정민(본란 공동집필) 교수의 '한시미학산론:시담사화'를 읽게 된
것은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이미 짐작해 온
대로 문학적 궁구와 표현이 극도로 절제된 동양적 상상력과 세계관,
서양 수용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독자 몫의 상상 공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해주는 우리 한문학의 '절제의 미학'과 그 박진성을 유감없이
잘 고구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옛 그림에 묘필을 일컫는 것이 있었다. 한 늙은이가 손주를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 먹이는 모습을 그렸는데, …세종께서 이를
보시고…그림이 좋기는 하다만, 무릇 사람이 어린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는 반드시 그 입이 절로 벌어지는 법인데, 이는 다물고 있으니 크게
실격…(어우야담).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일에 대한 관찰을
그림을 그린 화가는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화가가 놓친 것이
손주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고
보니, 그것은 결코 사소한 실수라 할 수 없다.

-영양은 잠을 잘 때 외적의 해를 피하기 위해 꼬부라진 뿔을
나무에 걸고 허공에 매달려 잔다고(전등록) 한다. 따라서 영양의
발자취만 보고 따라가다간 어느 순간 발자취는 끊어져 버리고, 영양은 간
곳이 없다. 시인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지 영양의 발자취뿐이다.
발자취가 끝나는 곳에서도 영양은 그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책 중의 한두 줄 예문이다. '영양이 뿔을 걸 듯' '그리지 않고
그리기' '말하지 않고 말하기' '허공 속으로 난 길' 등등의 소제목
아래 이 책은 그렇듯 탁월한 독해력과 문장 속에 시종 우리 한문시편들의
정수를 새롭게 닦아 보인다. 이는 물론 필자의 소설 표현 기법상의
훌륭한 귀감일 뿐 아니라, 오늘의 작가가 무엇을 어디까지 써 보이고
그의 눈길을 어디쯤 자리시켜야 좋으냐는 시점과 서사론의 근본 문제에도
큰 시사를 얻을 수 있음이 당연하다. 이런 책들에는 두고두고 경의와
감사를 바치고 싶다. (이청춘·소설가·순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