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게 아우, 대업을 이루시게. 내가 못다한 북벌을 그대가 이뤄야
할 것이야." 드라마 속 궁예는 왕건과 산속에서 마지막 술잔을 나누며
"대제국을 이뤄달라"고 당부했다. 순간, 앞서 지시받은 대로
경호실장격인 은부가 궁예의 목을 향해 칼을 날렸다.
장엄한 최후였다. 4일 오전 경북 문경새재 도립공원 내 용천계곡 야외
세트장에서 KBS 1TV 드라마 '태조 왕건' 중 궁예의 죽음 장면이
촬영됐다.
궁예는 왕건을 기다리며 인생무상을 떠올렸다. "인생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허허허,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
지난해 4월 첫 방송 후 1년여를 궁예로 살아온 탤런트 김영철(49)씨는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오늘 아침 촬영장에 준비된 술자리를 보고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잠시 휴식을 가진 뒤 머리를 기를
생각"이라며 "염색을 해볼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날 독백장면 촬영 도중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기도 했다.
대본에도 없는 상황이었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궁예에 몰두하다 보니 눈물이 나고 말았습니다. 폭군이나 영웅이 아닌
'인간' 궁예에 대한 연민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는 "시청자들이
궁예를 사랑해준 것도 그런 궁예의 모습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궁예의 죽음은 역사적 기록과는 다르다. 삼국사기 등에서
궁예는 식량을 훔치다 백성들에게 맞아죽는 것으로 나와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었으나 제작진은 "죽음 장면 직후 내레이션을 통해 사료 상의
기록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촬영장에는 수학여행을 온 마산 의신여중 학생 200여명 등 인파가
몰려 '궁예의 최후'를 지켜봤다. 도립공원 주차장도 평소와 달리
차량들로 만원이었다. 이날 촬영분은 5월20일 밤 9시 50분 120회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