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기대할만한 놈이야."
히딩크감독은 2일 밤 숙소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고종수(23ㆍ수원 삼성)가 안양 LG전서 프리킥 골을 터트리는 장면을 TV로
지켜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개성이 강하고 다루기 힘든 선수라는 말을
듣고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눈여겨 지켜봤던 고종수였다. 그런데
얼굴에도 그의 성격이 그대로 담겨 있었고, 훈련을 할 때도 여간 당돌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실전에선 감독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골도
많이 넣어 내심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히딩크감독은 고종수를 볼 때마다 네덜란드의 에드가
다비츠(28ㆍ이탈리아 유벤투스ㆍMF)를 떠올리곤 한다. '네덜란드의
고종수'가 바로 다비츠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비츠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고글을 쓰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축구선수다. 녹내장 수술로 눈을 보호하기 위해 고글을 끼고 볼을 차는
모습은 국내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별명은 '싸움닭'이다.
단신(1m69)에도 불구하고 지칠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데다, 불같은 성격으로 좌충우돌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9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잉글랜드)에선 히딩크감독에게 대들다가 쫓겨난 적도
있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감독이 다루기 힘들기로 유명한데 다비츠는
그중에서도 가장 튀는 존재였다. 당시 히딩크감독과 다비츠의 불화는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둘 사이의 앙금은 98프랑스월드컵 때 다비츠의 중거리슛
한방으로 깨끗이 해소됐다. 98년 6월 30일 네덜란드와 유고의 16강전.
양팀은 후반 막판까지 1대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로스타임에
접어들자 히딩크감독은 다비츠가 다리에 쥐가 난 것을 발견하고
교체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일이 벌어졌다. 다리를 절룩거리던 다비츠가 페널티
박스 왼쪽 외곽에서 쏜 20m 중거리슛이 골문을 가르고 만 것. 네덜란드의
8강이 확정되고 다비츠가 대표발탁 4년 2개월만에 A매치 데뷔골을
터트리는 순간이있다. 히딩크감독으로선 다비츠를 빼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평소 서먹하게 지내왔지만 다비츠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다비츠는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 20년만에
네덜란드의 월드컵 4강을 이끌었다. 경기가 끝난 뒤 다비츠는
히딩크감독에게 달려와 얼굴을 묻었다.
히딩크감독은 1일 밤 KBS의 한 프로그램 촬영을 마친 뒤 "다비츠가
8강전 뒤 나에게 달려와 포옹을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면서
"고종수를 볼 때마다 가끔씩 다비츠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고종수와 다비츠가 맞붙는다면 그것도 하나의
볼거리일 게다. < 스포츠조선 신향식 기자sh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