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2년간의 어둠을 뚫고 돌아온 '황금의 아이'. 그가 황금빛
찬란한 월드컵에 길고 긴 입맞춤을 하던 순간, 이탈리아 반도는 광란의
기쁨에 떨었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은 이탈리아의 파울로 로시(45)를
위한 무대였다. 어느 월드컵보다 주인공은 기구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고, 조연들은 더없이 화려했다. 로시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3골을 넣으며 '아주리 군단'의 새 스트라이커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24살이었던 80년 이탈리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3년 출장금지란 사형선고를 받았다.
'찬스 있는 곳에 로시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천부적인
골잡이였던 로시는 이후 그라운드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그의 애칭인
'황금의 아이(Bambino del Oro)'도 더러운 승부조작 이미지에 얼룩져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했다.
82년 스페인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축구인들은 우승후보 1순위로 '하얀
펠레' 지코와 소크라테스, 팔카우 등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던 브라질을
지목했다. 플라티니의 프랑스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을
위협할 상대로 꼽혔다. 아무도 이탈리아를 거론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스페인월드컵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로시를
사면했다.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이 적다는 조사결과도 있었지만,
"로시가 없으면 도대체 누가 골을 넣을 수 있겠느냐"는 여론에 힘입은
결정이었다.
로시는 간신히 그라운드로 돌아왔지만 스페인 월드컵 본선 1라운드
3경기에선 침묵의 연속이었다. 결정적인 찬스를 놓칠 때마다 야유가
쏟아졌다. 3무승부로 2차리그에 턱걸이한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에
2대1승리를 거두며 이변을 예고했고, 로시는 어시스트 한 개를 기록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4강진출을 놓고 벌인 브라질전은 역대 명승부 중
하나. 브라질의 압승을 예상하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로시는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로시는
폴란드와의 준결승전 두 골과 독일과의 결승전 한 골을 포함해 6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이탈리아에 52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