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마치자 마자
담양서점으로 달려갔다.…"

이상보 전 국민대학교 국문과 교수의 정년기념 시문집인 '옛 책과의
만남'(1991년 간) 69쪽에 나오는 담양서점 관련 내용이다.

이 박사가 이날 단골 고서점인 담양서점에서 찾아낸 것은 조선 중기
유학자 면앙정 송순의 문집 '면앙집 속편.'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온
그는 가슴이 설레어 잠을 설쳤다고 한다. 지난 90년의 일이다.

무등산 자락 광주 계림동의 헌책방 거리. 헌책방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담양서점은 69년부터 지금까지 이 거리를 지켜오고 있다. 김귀수 사장은
"고서를 찾는 사람들은 보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여기에 온다"며 "책
한 권을 산 뒤의 반응이 일반 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사람과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담양서점은 광주에서 유일한 고서점. 그래서인지 찾아오는 사람도
쟁쟁하기만 하다. 원로 변호사 홍남순 선생은 1주일에 4~5일씩 이곳을
찾는 최고의 단골. 이상보 교수와 한학자 서재복씨, 향토사학자
심정섭씨, 소설가 곽재구씨 등이 이곳에서 옛책의 향취에 젖어가며
고서를 뒤적이는 이들이다.

대형서점 인터넷서점 등쌀에 지방서점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게다가
책을 읽는 주독자층은 고서점에는 얼씬도 안하는 10~20대 젊은이들.
장사가 잘 될 리 없다. 광주의 유일한 고서점이라는 자부심과 호남
선비와 학자들의 책 복덕방이란 위상에도 불구하고 서점공간은 매장이란
말이 쑥스러운 고작 8평.

“돈 벌자고 시작한 서점이 아니지요.”

어려서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배우고, 이어 대학과 맹자를 독학했을
정도로 그는 한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날 '리어카 책방'에서 호남
향교지를 발견했다. "책을 들춰보니 집안 어른들 이야기가 기록돼
있더군요. '이거 내가 안 사면 어느 집 벽지로라도 없어지겠다' 싶어
책을 샀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죠."

그 후 폐지공장이나 초가의 벽지로 없어질 운명에 처한 책들을 무수히
구해냈다. 면앙정 속집을 비롯해 하서 김인후 선생과 송강 정철 등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를 담은 '석담일기', 세종 16년에 발간된 '대학연의'
초주갑인자본, 조선조 병장기 도해서인 '병장설', 서산대사 문집 등을
잇달아 발견해 지역 학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도 좁은 서점에는
3000여권의 고서가 선인들의 지혜를 뿜어내고 있다. "내고장을
사랑한다면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지역의 지적 산물을
지키는 것으로 애향운동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