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군이 자유민주당 새 총재로 선출됐습니다.”

24일 오후 도쿄 자민당사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
전 후생상은 1차 투표에서 예상을 훨씬 넘는 298표를 얻어 차기 일본
총리 자리를 내정받았다.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가 얻은 155표는
자파 계열 의원들 숫자와 거의 일치해, 고이즈미 후보는 군소 파벌과
무파벌 표 등을 모두 독식한 것으로 분석됐다.

개표 결과 발표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고이즈미 새 총재는 "자민당을 바꾸고 일본을
바꾼다는 구호로 선거에 임해 당원들의 뜨거운 지원을 받았다"며
"새로운 시대에 자민당원이 가슴을 펴고 자신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 생각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투·개표가 진행되는 1시간 동안 고이즈미 후보는 승리를 확신한 듯 엷은
미소를 띤 여유있는 표정이었으며, 하시모토 후보 역시 패배를 예상한 듯
옆에 앉은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딸 유코 의원과 함께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간간히 웃기도 했다.

23일까지만 해도 하시모토 후보가 사퇴하지 않아 2차 결선투표까지 갈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이날 오전 가메이 시즈카 후보가 고이즈미
지원을 선언하고 후보를 사퇴함에 따라 1차에서 고이즈미가 과반수를
확보할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가메이 사퇴'는 실세 당직인
'간사장' 등 자리를 놓고 뒷거래를 한 것이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25일 당직 발표에서 가메이파에 대한 배려가 사실로 드러나면,
'밀실 정치를 타파하겠다'던 고이즈미의 공약은 거짓이 된다.

고이즈미 총재는 이날 오전에도 기자들에게 "당직 인사는 파벌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적재적소 원칙에 따를 것"이라고 표명했지만 이미
'기존 정치 타파'라는 청사진에는 먹물이 튀었다.

고이즈미 총재는 23일 "26일 총리 지명 선거가 끝난 뒤 당3역 인선과
연립정당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일본 정계는 '총재
지명 당직 인선 정책 조정 총리 지명'의 순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파벌들이 자리를 나눠갖고 이해를 조정한 뒤 '총리'로 뽑아주는
식이다.

고이즈미는 이를 타파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이지만, 연립 여당인 보수당과
공명당이 "정책 협의없이 표를 던져줄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 친정인
모리(삼)파까지도 "정조회장은 있어야 정책을 결정할 것 아니냐"며
압박, 결국 몇시간만에 "총리지명 선거 전에 당3역 인선을
마치겠다"고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아사히와 요미우리신문 등은
"탈파벌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자민·공명·보수 3당 간사장들은 25일 3당 정권협의를 거쳐
26일 총리 지명 투표를 갖고, 5월7일 총리 취임 연설을 한다는 향후
일정을 확정했다.

( 동경=권대열특파원 dykwo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