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좌절은 없다."

안정환(25ㆍ이탈리아 페루자)이 세리에A 진출 9개월만에 데뷔골을
터트리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 버렸다. 22일 밤(한국시간)
아탈란타와의 2000∼2001시즌 세리에A 27차전이 벌어진 페루자 레나토
큐리 경기장. 안정환이 후반 50분 그림같은 17m 중거리슛으로 골망을
가르는 순간 1만5천여명이 들어찬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1-2
패배 직전에 동점골을 뽑아내는 드라마를 현장에서 지켜본 페루자
교민들의 눈가엔 어느덧 이슬이 맺혔다.

주심조차 안정환에게 '세리에A 데뷔골'을 축하하는 악수를 청하며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을 정도. 코스미감독의 부인은 안정환을 와락 끌어
안으며 축하해 주었다. 페루자 팬들은 인터뷰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경기장 입구에 서서 안정환을 연호하며 열광했다.

안정환은 그동안 한도 많았다. 지난해 10월 2일 레체전에 선발출전한
이후 좀처럼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 벤치신세는 물론 아예
엔트리에서 빠져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수모도 수없이 겪었다.

"역시 한국선수들은 유럽에서 통할 수가 없어"란 말이 들려올 땐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리그가 막바지로 치닫자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할 바엔
차라리 페루자를 떠나겠다"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정환은 이날 골로 이번 시즌 남은 7경기에서도 좀더 많은 출전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8일 볼로냐전에서 첫 어시스트를 기록한
바 있고 코스미감독도 "안정환이 재능이 있는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 페루자는 안정환 덕분에 8승9무10패로 11위에서 10위로
올라섰다.

안정환은 재계약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 페루자에
잔류할지 떠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팀에선 그를 잡아 두고
싶어하기 때문.

"그동안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꼭 기회가 올 것으로 믿고 이를
악물고 준비했습니다. 성원을 보내 준 고국 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국인 최초로 세리에A에서 득점포를 쏘아올린 안정환. 하얀 이를
드러내며 두 주먹을 힘껏 쥐어 보이는 그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 보였다.

〈 정리=스포츠조선 신향식 기자 sh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