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2%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개개인의 무기력감을 반영했는지,
요즘 한국 사회 전체가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최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 모두가 '신국익우선주의'를 앞세워 국제질서를
개편하고 있다.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남북관계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이렇게 세계는 한국에 수없는 도전을 하고 있는데, 한국은
새로운 국가전략을 수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한국의 국가경영 주체들은 언제까지 당리당략에만 집착해 있을
것인가. 실패했다는 김영삼 정부도 임기 후반에 세계화와 제도개혁에
총력을 다하지 않았던가.
우선 국정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여당을 보자. 집권 초기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과 '생산적 복지' 등의 전략을
제시하고자 노력했지만, 작년 4월 총선을 기점으로 국내 정치의 주도권에
관심을 돌렸고 올 초 대두된 '강한 정부론'은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많은 지식인들이 민주화 15년 기간 중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온 국정마비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가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현 정부가 왜 강력한 권한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부가 먼저 새로운 국가 전략을
제시하고 난 후 이를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을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이 순리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현 정부의 '강한 정부론'에 '국민우선 정치'로
대응하고 있다. 사실 현 정부가 두 가지 면에서 민생에 소홀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첫째, 민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잇따른 정책실패가 발생했다. 그뿐 아니라,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은 교육·환경·복지·실업·빈곤 등 사회정책 분야 전반에서
고조되고 있다. 둘째, 현 정부가 그동안 국정철학의 개발과 홍보에
유달리 노력했다는 점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어려워질수록 지도자가
주창하는 추상적인 정책 목표와 구호는 국민들에게 공허하게 들린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의 '국민우선 정치'를 국가 전략이라고 보기는
이르다. 아직 국가전략을 구성하는 분야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하에서 한국의 정당이 이처럼 국내정치용 구호만으로
상대방과 경쟁하는 상황이 2002년 대선까지 이어지면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부터 대선 전까지의 정치·경제 상황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되고 이에 따른 국정운영
능력의 상실로 경제도 어려워질 것이다. 과거 정권 교체기와는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개헌론까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어 권력 이양에 대한
불확실성은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게임의 법칙까지 바꾸겠다는
주장은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상황과 동떨어진 정치권의 우선 순위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렇다면 국가의 우선과제를 등한시하는 정치권을 변화시키는 방안은
무엇인가. 결국, 국민과 지식인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민
하나하나가 한국 현실에 관심을 갖고 정당이 제시한 정책을 평가하여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정당의 정책경쟁을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지식인들도 하루빨리 최근 일련의 정책 실패로 훼손된 분야별 전문가
네트워크의 복원에 동참해야 한다. 독립적이며, 전문성이 구비된, 그리고
자체 내 공론을 도출하고 규율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independent
think net)이 국정 주체세력들과 협력하여 국가전략 수립을 주도해야
한다.
(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