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스물두 살의 한 젊은 청년은 당시로서는 개념조차 불분명했던 전자공학을 공부해 미래의 국부를 창출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법조인이자 당대 재산가(고 오숭은 변호사)의 아들이었지만, 초등학교 시절 과학시간에 배운 전기현상에 흥미를 느껴 그런 꿈을 꾸었다.

그는 조선인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일본 와세다대 전자공학과에 거뜬히 입학했다. 이 젊은이가 우리나라가 정보통신분야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오현위(88·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박사다.

오 박사는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와 1948년부터 서울대 공대교수로 있으면서, 정보통신기술분야 개척에 온 힘을 쏟아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창원기능대학 설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 윤종룡 부회장,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오 박사는 지난 61년 아날로그와 디지털 전환 연구를 발표, 당시 아날로그 중심의 통신이나 방송신호를 디지털화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디지털로만 바꿀 수 있다면 화상·음향·데이터·동화상 등을 손쉽고 빠르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는 현재 종합정보통신망인 ISDN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오 박사는 또 트랜지스터회로, 펄스변조연구 등 현재 우리나라가 정보통신분야에서 강점을 나타내는 분야의 논문을 주로 발표해왔다. 그는 현재 급부상 중인 TFT-LCD의 기본기술인 ‘평판 디스플레이’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고,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부품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70~80년부터 강조해왔었다.

정부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 오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 컨벤션 오디토리움에서 열리는 ‘제34회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 이번에 처음 제정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을 서훈했다.

대한민국학술원 이호왕 회장은 오 박사에 대한 추천서에서 “그는 우리나라 IT분야의 원로학자로 수많은 학자와 기술인을 양성,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초석을 닦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