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씨병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무하마드 알리는 세계적인
떠버리로 명성이 자자했다.

지금은 병들고 기력도 떨어져 조용해졌지만 조 프레이저나 조지 포먼
등과 세기의 대결을 벌이던 전성기엔 그야말로 잠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 존재하는 한 세상 어디를 가나 떠버리는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 입빠른 소리나 섣부른 답변을 삼가는 철저한 국민성을 가진
나라 일본에도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떠버리가 있어 자주 신문의 한켠을
장식하곤 한다.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트루시에
감독(46)이다.

지난 98년 8월 팀을 맡아 2년하고도 9개월째 지휘해 오고 있는 그는
적어도 네덜란드 출신의 한스 오프트씨나 브라질 출신의 팔칸씨 때보다는
일본축구를 성큼 선진화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데 말이 좀 많은 게 탈이다.

아는 게 많으면 의당 하고 싶은 말도 많겠지만 트루시에 감독의 경우
다혈질적인 성격 탓에 그 말들에 감정이 실린다는 게 문제다.

작년 11월 그는 도쿄에서 가진 외신기자 회견장에서 "일본이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 적이 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또 어떤 근거로 그런 소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일본의 월드컵 우승설'은 외신기자들의
입과 손을 통해 전세계로 날아갔고,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물론 일본이라고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던 기자는 트루시에 감독의
말에 공감하는 일본인을 거의 보지를 못했다.

일본이 지난달 25일 프랑스와의 A매치서 0대5로 무참히 깨지면서 그의
'월드컵 우승설'은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큰소리 뻥뻥 치다가 큰 망신을 당했으니 어지간한 사람 같았으면
쥐구멍부터 찾았을 게다.

한데 트루시에 감독의 기세는 조금도 꺾일 줄을 몰랐다.

나흘 뒤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벌어진 스페인과 프랑스의 친선경기를 본
그는 대뜸 "스페인 정도는 5대0으로 이길 수 있다"며 또 한방의 폭탄을
터뜨렸다.

프랑스에 뭇매를 맞고도 그 프랑스를 2대1로 누른 스페인을 대파할 수
있다고 했으니 누가 그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일본은 오는 25일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스페인과 한판 붙는다.

트루시에 감독 말마따나 일본이 5대0으로 이길 수도 있고, 또다시
0대5로 깨질 수도 있다.

결과야 어찌되건 '엄청난 예언'이 따라붙은 만큼 흥미로운 경기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트루시에 감독은 이번 스페인전이 끝난 뒤 중대한
발표를 할 모양이다.

아마도 감독직 사퇴여부에 대한 얘기가 아닌가 싶다.

그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큰소리 뒤의 큰망신'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덜컥 사표라도 던질 경우 일본축구는 2002년 월드컵을 1년여 앞둔
상황에서 적잖은 혼란에 빠지게 되니 일본축구계는 지금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일 게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참 다행인 것 같다.

히딩크 감독이 답답할 정도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말이다.

〈 스포츠조선 최재성 기자 kkachi@ 〉

최재성 기자 kkach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