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검찰에게서 정치적 중립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무리인가. 며칠 전에
있었던 서울고법의 총풍사건 판결을 보면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재판부의 결론대로라면 안기부와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부풀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풍에 이은 세풍사건으로 정국이 꼬여있던 98년 9월, 정치권에서 먼저
안기부 조사내용이 흘러나온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당시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사석에서 "이회창 총재는 곧 정계를 떠나야 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한 달 가량 지지부진하던 세풍사건 수사를 의식한
듯, 그는 "세풍보다도 엄청난 사건이 드러날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9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판문점에서
총격을 해달라고 북한측에 요청했다"는 내용의, 소위 '총풍 사건'이
터져나왔고, 여권은 한나라당의 개입을 기정사실화한 채 공세를 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이 사건은 희한하게 변해버렸다. 1심에선
한나라당의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더니, 2심 판결에선 '총풍 모의는
없었다'고 한다. '대선 승리를 노린 북풍 기도'가 아니라, 한성기라는
한 개인의 해프닝에 가까운 돌출행동이라는 게 판결의 요지다. 대법원의
최종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검찰의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사건 외에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정치·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던 검찰수사 사건들이 법원으로부터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옷 로비 사건이다. 애초부터
지도층의 부도덕한 행태에 가능한 한 칼을 대지 않으려다 국회 국정조사는
물론 유례 없는 특별검사의 수사까지 자초했던 검찰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국회가 고발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특별검사와는 정반대로 이형자씨
자매를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의 이런 뱃심은 그러나 재판부가
이형자씨 자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특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참담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심재륜 전 고검장이 낸 면직무효 소송에서도
망신을 당한 검찰은, 한빛은행 사건에선 "수사가 미진하다"는 '판결외
판결'까지 받았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무리하게 기소한 사건에 대해선
제동이 걸리고, 피해가고 싶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부실한 수사라고
지적받는 치욕을 당한 것이다.
이처럼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재판에서 검찰이 죽을 쑤다보니 검찰을
보는 국민들의 눈초리가 고울 리 없다.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은
위험수위에 달한 느낌이다. 한 법조인은 "검찰이 이처럼 불신당하는
상황에서 사회정의 실현이나 국가기강 확립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한숨지었다.
물론 지금의 검찰이 그 멍에를 전부 뒤집어 쓰는 건 불공평하다. 검찰과
정치권력의 유착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부끄러운 문화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강압정치에 맞선 끝에 집권한 민주화 세력들이
과거 야당시절의 뼈아픈 경험들을 잊은 채 검찰을 더 정치도구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문민정부 출범 이후 검찰 수사에서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정치권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수사방향을 제시하는
듯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이 현 상황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히려 검찰이 앞장서서 권력의
입맛을 살펴가며 영합하는 태도를 취한 적은 없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굳어져온 검찰과 정치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버리려는 노력을 더이상 늦춰선 안된다. 정치권력은
검찰을, 법을 함부로 휘두르고 싶은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검찰은 검찰대로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어버리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빨리 강구해야 한다. 선반에 진열해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장식품은 이젠 치워버릴 때다.
( 편집국 부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