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동안 한국 성인(18~55세) 열사람 중 한사람이 '친구'를 봤다.
최단 기간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난리들이지만, 개봉을 앞두고
누구도 그렇게까진 기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 감독 곽경택은
여전히 현실감이 안난다고 말한다. 전국 200만 기록을 세우던 날, 곽경택
감독을 만났다. 초록색 티셔츠에 휴대 전화 목에 건 발랄한 모습으로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아침 9시30분에 나타났다.

―신기록 수립 기분이 어떤가.

"겸손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런 찬사 받아도 되나 싶다. 자꾸 쉬리나
JSA랑 비교하니까, 민망하기도 하고, 내가 그분들 무등 타고 다니는
느낌이다. 흥행 성공으로 뭣보다 기쁜 것은 다음 영화에 대한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덜 기획적인 영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자신있는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기쁘다."

―영화 스타일이나 내용에 대한 평가보다, 감독의 자기 체험이라거나
등장 인물이 실존한다는 등 영화 외적인 것이 화제되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가.

"내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한 시절과 그리움이라면,
정공법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물론 스타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내 선을 넘는 욕심 부리면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
수도 있었다. 내가 이야기하려던 것이 (관객들에게) 공감되었으니까 그런
관심도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고맙다. 그러나 현재 복역 중인
친구에게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문제될까봐 걱정이다."

곽경택 감독 전작은 '억수탕'(97년) '닥터K'(99) 2편. '억수탕'은
전국 3만이 안들었고, 차인표를 간판으로 내세웠던 '닥터K'도 서울
5만을 못채웠다. "이번에도 안되면 나는 끝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게 '친구'다. "앞 작품 2개 다 말아먹은 감독이 이번엔
30,40대 남자들 이야기라며 자작 시나리오 들고 가니 흥행 요소가 없다고
다들 고개를 젓더라."

―시나리오를 거부한 제작자들에겐 상당히 달콤한 복수가 되겠다. 감독
자신은 영화에 만족하는가.

"아무리 애써도 미술이 제대로 안됐다. 부산도 그동안 너무나 변해서
70, 80년대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꽤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
자갈치 시장 달리는 장면의 '노래방'이 그렇고, 고층 빌딩이 또
그랬다. 눈에 띄지 않길 바랬지만, 관객들이 그런 것 지적할 때마다 정말
미안하다. 약점은 이야기에도 있다. 후반부에 가서 영화적 결론 빨리
맺기 위해 너무 많이 극화했다."

―준석의 모델에 대해 대단히 호기심이 많다.

"꼭 한번 면회를 가고 싶으니 제발 이름과 교도소를 알려달라고 편지를
보내온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두가지 점에서 그를 공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그가
영웅시되는 것도 문제다. 지가 즈그 조직에서야 영웅되고 멋있겠지만, 그
모습이 과도하게 비춰지는 것은 곤란하다."

―배우들로부터 120% 연기를 끌어냈다.

"배우들에게 정말 고맙다. 영화 들어가기전 결심한 건데, 배우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앞 작품(닥터K)의 실패도 바로
그것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연출과 배우가 서로 원하는 것만 주고
받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산술관계로는 실패 밖에 없다.
배우에게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어떤 조명, 어떤 각도에서 어떤 모습과
느낌이 나오는지, 그걸 화학적으로 완전히 녹여내지 않으면 최고치를
뽑아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엔 촬영 들어가기 전 열흘동안 자갈치,
극장, 부산고등학교, 노래방 등 촬영할 곳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MT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일주일 지나니까 장동건씨도 풀어지더라. 광안리
바닷가에서 뛰어놀고 소리지르면서 완전히 편하게 농담도 지르는 사이가
됐다."

―현장에서 편집을 해가며 촬영한 방식을 택했는데, 어떤 효과가 있었나.

"미국에서는 현장 편집이 필수다. 그 자리에서 화면 효과나 분위기를
파악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효과적이다. 이번엔 후배가
거의 그냥 해주다시피해서 실비만 들었지만, 효과는 2억원 이상 된다.
콘티하고 전혀 다른 게 나올 때 감독이 현장서 창피당할 각오도 해야
한다. 나도 롤러 스케이트장 장면 같은데서 몇번 망신당했지만, 그때
즉시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갈 수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지금까지 3편을 모두 부산서 찍었다. "부산 밖에
아는 게 없다. 부산서 26년 살고 미국 4년 살고 서울에 왔는데, 난
서울도 모르고 서울 정서도 잘 모른다"는 그는 지금 부산 뿐 아니라
전국에서 70, 80년대 젊음을 보낸 이들의 '영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