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급당 25명-토론식교육등 시안 마련해 놓고도 쉬쉬 ##
'학급당 25명 내외. 토의식 교육. 1년 3~4학기제 도입. 한 학기
이수과목 5과목 이하의 집중이수제. 프로젝트식 수업. 국제 신사교육
교과 개설. 2개 외국어 의무 이수. 해외 테마 연수. 해외 자매학교 연계
교육. 저소득층 자녀 장학금 입학 할당제.'
서울 사립 A고가 마련한 자립형사립고 청사진이다. A고는 이 청사진을
보여주면서도 학교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극구 꺼려했다. 평등교육
의식이 뿌리깊은 우리 사회 풍토에서 우선적인 질시와 공격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A고 교장은 "사학이 사학답게 운영하는
자율권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정부가 현행 평준화 제도의 보완책으로 제시한 게
학생선발권·수업료책정권·교과과정운영 자율권을 가진 자립형
사립고교. 그러나 도입방침 2년이 지났지만, 정부의 어정쩡한 자세로
시행여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02년부터 재정 자립도가
높은 사학부터 도입키로 했으나, 최근에는 뚜렷한 이유 없이 2003년
이후로 연기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국고지원 없이 완전히 자립 운영하는 사립학교는 서울
중동고 등 43개 교. 이들은 실질적인 자립형 사립고이면서도 상당수가
아무런 자율권이 없는 게 현실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사립학교에 대한 국고지원은
2조4182억원.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국고지원으로
사학의 자립의지가 무뎌져온 게 사실"이라며 "사립에 지원하는 국고를
공립에 투자하면 공립도 더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단체들은 자립형 사립학교가 일부 부유층만 들어가는 귀족학교나,
신흥 입시명문 학교로 변질될 것이라며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립형 사립고가 도입되면 공립학교가 질적 수준을 향상하려는 경쟁적
노력을 경주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고급 좌석버스가 요금을 인상한 만큼 서비스를
개선했을 때,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지하철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예상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김정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사회적 위화감의 해소책으로는 일정 비율의 저소득층 학생
선발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시행의지 여부가 열쇠란 얘기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의약분업 실패로 코너에 몰린 현 정부가 평준화 정책의 근간을 깰 소지가
큰 자립형 사립고교를 도입하는 것은 부담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현 정부
내 시행은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팽배해 있다. 자립형 사립고를 강력히
추진했던 이돈희 장관이 경질되고 한완상 부총리가 들어선 이후 교육부
내 분위기도 소극적으로 돌아섰다.
다양한 선택이 존재하는 다양성 있는 사회와 획일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교육시스템. 현재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조기유학, 교육이민, 교육
엑소더스가 후자에서 비롯된다는 데 동의한다면 해결책은 이미 나와있는
셈이다.
학부모들은 중·고등학교 교육에 다양한 선택권과 자율권이 부여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애가 불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교육시키기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러한 생각 밑에는 시행착오를
거듭해온 교육정책에 대한 짙은 불신과 배신감이 깔려있다. 인문계
일반고교 고3 자녀를 둔 필자로서 이러한 정서가 충분히 이해는 간다.
그러나 어쨌든 현재 중·고교 공교육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면 무언가 분명히 달라지기는 달라져야 한다.
교육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학부모에게 또 하나의
불안만 안겨준다. 현재의 큰 틀에서 다양한 선택권을 조금씩 늘려 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여러 학자들의 좋은 의견과 외국의 좋은
사례들이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고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사실도
학부모들은 알고 있다.
개선의 방법으로는 첫째, 평준화지역의 경우 기본적으로 가까운 학교에
배정하는 틀을 유지하되 이미 존재하는 특목고를 원래의 설립취지대로
적극 되살리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영재학교, 자립형 사립학교를 적은
숫자로부터 도입하여 서서히 늘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립형
사립학교가 일단 성공한다면 그 숫자도 늘 것이고 일반 공·사립학교에
돌아갈 수 있는 교육재정의 몫도 증가하리라 기대한다.
둘째, 같은 학교 내에서(혹은 같은 학군 내에서) 다양한 교과목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확대 실시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서 이러한
제도가 어느 정도 도입될 예정이라 한다. 교사수급·시설부족 등
예상되는 부작용들은 정부의 적극적 재정지원으로 해결해야 하며,
우열반에 대한 일반의 우려는 잘못된 선입견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교육
수요자인 학생을 무시하는 일이다. 지식기반사회, 국제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의미 있는 공부와 의미 있는 교육비 지출은 억제할 필요가
없다. 벼랑 끝에 몰린 중·고등학교 공교육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다양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육체제를 열어주는 것이다.
(임지순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