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모스크바를 오가는 횡단열차.평양발 모스크바행 열차는 열흘에 한 번 운행되며,1~2개 객차를 달고 두만강을 건너온 열차는 핫산을 거쳐 우수리스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와 합류해 모스크바까지 간다./이르쿠츠크 <br><a href=mailto:kiwiyi@chosun.com>/이기원기자 <

## "컵라면 사세요" 여인들의 바구니엔 고단한 삶이…##

시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에도 맹점이 있다. 충분히 의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도 의식되지 못하는 사물이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 풍경이 그러했다. 그 맹점을 의식할 수 있게 된
것은 여행의 두 번째 구간, 이르쿠츠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까지 나를
실어줄 바이칼 호 안에서였다.

이번에도 시간에 쫓겨 급하게 열차에 오르는데 전형적인 러시아 미인인
여승무원이 비자 제시를 요구하기는커녕, 살풋 웃으며 짐 나르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첫 번 째 열차의 여 승무원에게서 받았던 고압적인
인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열차가 출발한 뒤에는 모포와 이불의
시트까지 갈아주어 나를 은근히 감동시키기까지 했다.

그 뒤에도 이어지는 크고 작은 친절과 배려가 고마워 담배 한 갑을 주며
명찰을 보니 이름은 옥산나, 낯설지만 예쁜 이름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개인 신상에 대해서는 더 알아볼 길이 없었지만, 어쨋든 그 예쁜
이름은 그때까지 무심히 보아 넘겼던 시베리아 철도의 여 승무원을 내가
의식적으로 관찰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시베리아열차의 여 승무원은 대강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겸하는 듯했다.
정장을 입고 비자 제시를 요구할 때나 발착 때의 승객관리를 할 때는
어김없이 권위적인 관료의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운행 중 편의(便衣)로
갈아입고 보통 아홉 개 정도의 '룩스'칸이 있는 객량을 규율 관리할
때는 옛날 우리네 차장을 연상시켰다. 그러다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객량 양쪽에 있는 두 개의 변소며 신발에 묻어온 눈 때문에 더러워지기
쉬운 복도의 카페트와 여럿이 써서 곧잘 지저분해지는 온수통 주위를
쓸고 닦을 때는 영낙 없이 하녀였다. 열차가 설 때마다 도끼를 들고
나가 스며든 눈보라로 얼어붙은 승강구를 꽝꽝거리며 깨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세 가지 역할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그녀를
보면서 열차 시간표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그녀가
진공소제기를 끌고 느긋하게 청소를 시작하면 그 구간은 틀림없이
길었다. 그녀가 변소 문을 잠그고 객차 안의 정돈 상태를 살피면 십분
안에 열차가 설 것이고, 좋은 회색 나사천의 정장에 담비 털모자를
갖춰 쓰면 적어도 십분은 멈추어 설 역이 가까웠다는 뜻이었다.

이웃 객실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도 바이칼 호 안에서였다. 내 옆
룩스칸에는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젊은 러시아인 부부가 타고 있었다.
지나가다 보면 어떤 때는 다정하게 차를 나누고 있었고 어떤 때는 휴대용
체스판을 펼쳐놓고 체스를 두고 있었다. 몇 시간이고 문을 닫아걸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때로는 나란히 복도에 나와 서서 눈 덮인
평원을 바라보기도 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멋진 신혼여행 코스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을 내게 들게 한 것도 그들 젊은 러시아인 남녀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정병선 기자가 그들에 관한 뜻밖의 정보를
일러주었다.

"자 사람들 부부가 아닙니다. 남자는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전기회사에
다니는데 이르쿠츠크에 출장 갔다오는 길이고, 여자는 이르쿠츠크에 있는
병원에 근무하는데 노보시비르스크에 볼 일이 있어 가는 길이랍니다.
열차에 타기 전에는 서로 몰랐고…. 물론 둘 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구요."

소설 뿐만 아니라 기행문에서도 읽은 적이 있는 일이었지만,
실제상황으로 보게 되자 조금은 아연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내릴 때
유심히 관찰하니 열차에서 내린 그들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헤어졌다.
열차에 오르기 전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어 따로따로 짐을 끌며
인파에 섞여드는 것이었다. 생각느니,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열차가 설 때마다 몰려들던 잡상인들도 한번쯤은 얘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낮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새벽 두 시, 세 시에 서는 역에도
수십명의 잡상인들이 기다리다 몰려왔다. 대개 인근 지방의 농부들로,
영하 30도가 넘는 추위 속에 밤잠을 설쳐 가며 그들이 바구니에 담아
내놓은 상품은 그대로 고달프고 넉넉치 못한 그들 삶의 반영이었다.

찐 감자, 삶은 계란, 으깬 감자 쇠고기를 넣은 러시아식 튀김만두,
자가 병입한 우유와 꿀, 조각 낸 통닭 같은 농산물의 일차
가공식품이었다. 비싼 식당칸을 이용할 수 없는 대부분의 승객들을 위한
것이지만, 자본주의식 상품의 포장과 진열에 익숙한 내게는 초라하다는
느낌이 앞섰다. 간혹 가다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팔도(八道) '도시락 라면'을 무슨 자랑처럼 바구니 제일 위에 얹어 나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의 바구니도 통틀어 백 루블리(2만원
정도)를 크게 넘을 것 같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띠고 있는 국제선 항로같은 성격도 내가 다른 것을
애기하는데 바빠 빠뜨린 의식의 맹점 중에 하나가 된다. 이미 지난
구간에 지나왔지만 치타와 울란우데를 지날 때 그 국제선적인 성격은
가장 잘 드러났다. 몽골 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표시를 한 객차들과 그
승객들 때문이었다. 남의 국경 안으로 들어간다는 조심성 때문인지
객차들은 한결같이 말끔하게 잘 단장되어 있고, 승객들도 나들이
차림이라 러시아 객차들과 승객들을 더욱 낡고 우중충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시베리아 철도에서 본 외국 객차 중에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은
것은 아무래도 평양-모스크바 팻말이 붙은 객차일 것이다.
우스리스크에서 붙은 것인 듯 한데 기자들이 그 존재를 안 것은 아마
시베리아 열차 탑승 이튿날부터였다. 취재 사진 기자 모두 그 뜻 아니한
호재에 탐을 내어 열차가 설 때마다 접근을 시도했으나, 어찌된 셈인지
3박4일 내내 객차 문 한번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도 간절히 만나 보고자 했던 그 객차 안의 승객들을 보게
된 것은 열차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뒤였다. 열차에서 내리면서도 끝내
단념하지 못해 평양-모스코바 객차 쪽으로 가보았는데, 그렇게도 굳게
닫혀있던 객차 문이 열려있고 그 승강구에 두 사람이나 내복차림으로
나와 밖을 구경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 사람은 차아무개라고 하는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이었고,
다른 한사람은 출장 중이라 했다. 생각 밖으로 시원스레 대답해주는
그들과 조심성에 조심성을 거듭한 대화를 시작했으나 시간이 너무
짧았다. 남북한 대표라도 되는 양 의례적인 얘기를 몇 마디
주고받다가 모스크바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뒷 얘기지만
모스크바에서는 이런 저런 일정에 쫓겨 결국 그들에게 연락하지
못했는데, 부디 우리 남북 대화도 그런 것이 되지 않기를.

(이문열/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