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졌듯 매해 유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알바니아
출신 프랑스 거주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의 장편소설 '부서진 사월'에는
그의 조국 알바니아 사람들의 한 끔찍스런 관습법이 펼쳐진다. 어느 집안
사람이 누구에게 해코지를 당해 죽으면 그 집에선 상대 당사자나 가족의
누군가를 골라 살해할 복수의 권리가 주어지는데, 그 잔인한 추적과
살인의 권리를 행사(살인)한 사람은 그 지역을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에게
소위 '피값'이라는 것(재물)을 바치고 형사 책임을 면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복수의 표적으로 도피와 은둔의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가 끝없이 이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저주스런 악습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도덕적 정결성이나 폭력성보다 그 피값을 노리는 배후
권력자의 보이지 않는 손길 때문이다. 복수의 살인이 이루어질 때마다
죽은 자의 피값을 대신 챙기는 배후의 권력자는, 그 악습의 이득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가해 장본인이나 가족이 아닌 제3의 우연스런
조력자까지도 복수의 대리 표적으로 지목하는 것을 용인하는 따위로, 그
살인극을 활발하게 이어가도록 부추긴다. 보이지 않는 권력자는 그 몹쓸
관습의 보호막 뒤에서 그의 백성들의 자존심과 복수심을 팔아 그
피값으로 자신의 부를 쌓아가는 것이다.
이보다 앞선 그의 출세작 '죽은 군대의 장군'에서는 이 권력의 패륜적
이득 챙기기가 훨씬 희극적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는 전날의
세계대전 때 알바니아를 전장으로 삼아 싸우다 죽어간 외국군 전사자들의
유골 발굴과 송환 작전이 당사국 군대들에 의해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알바니아 관료들의 더러운 이득 챙기기 비리가 끼여든다. 당사국
가족들로부터 자기 유관 유골을 우선적으로 찾아달라는 청탁을 대행하고
다니는가 하면, 찾아내지 못한 유골을 다른 사람의 유골로 몰래 바꿔치기
하거나, 그를 위한 흥정을 일삼는 따위. 어쨌거나 황폐한 알바니아를
무대로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듯 매우 비극적으로 혹은 희극적으로
제 배를 불려간다.
정말로 이 땅위의 권력은 다 그런 것일까. 옛 임진란 때 일본의 여러
곳에선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가는 우리 한인 포로들의 노예시장이 성시를
이루었다 하거니와, 그리고 그 많은 포로들이 전쟁 포로가 아니라
일인들과 우리 해안고을 방백들간의 은밀한 뒷거래 속에 끌려간 일반
백성들이 태반이었다 하거니와, 그런 비극은 이 지구상에서 물론
알바니아에서만 빚어진 일이 아닐 듯싶다. 하지만 카다레는 그런 비극을
세계 앞에 주저 없이 써냈고, 그 소설의 당당함으로 하여 알바니아와
알바니아 민족의 존엄성을 크게 지켜냈다.
“밀로셰비치가 권력을 내놓고 물러날까요?”
작년 가을 카다레씨가 '서울 국제문학 포럼'(대산문화재단 주관)
참석차 서울에 왔을 때 필자가 함께 한강을 건너는 택시 안에서 그에게
물었다. 때마침 라디오 뉴스에서 세르비아 내전사태와 밀로셰비치 대통령
퇴진 압력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데다, 그 곳은 바로 그의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민족간의 갈등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대답했다.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그걸 자신할 수 있습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권력의 맛을 알고 나면 절대로 권력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게
권력의 무서운 덫이요 함정입니다."
나는 그의 책들을 읽은 터였으므로 그런 그의 대답에 수긍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장담은 비록 이틀 뒤에 빗나간 것으로 드러났지만,
나는 그가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이청준ㆍ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