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브리지 호수햇살이 따사로운 오후,학교 수업을 마친 한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우드브리지 호수 옆을 지나고 있다.어바인시내 곳곳에 있는 공원과 호숫가에는 주민통행을 위한 자전거전용도로가 정비돼있다.

## 공원 80곳… "여성이 살고 싶은곳" 美서 1위 ##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작은 도시 어바인(irvine)의 상공회의소 의장
재키 앨리스(59)는 마흔살까지 집에서 살림만 하던 전업 주부였다.

경력이라곤 두 아이가 모두 10대가 된 뒤 파트타임으로 여행사 일을 한
게 전부다. 남편 직업상 이사를 자주 다녀 취업이 곤란했던 데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엄마가 곁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취업을 결심한 것은 어바인에 정착한 뒤였다. 특별한 전문성도
없이 중년의 나이로 취업한 앨리스가 정상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신생도시 어바인에 넘쳐흐른 '철저한 능력 위주'의 결과다.

캘리포니아주 특유의 온화한 햇살이 내리쬐고, 곳곳에 자리잡은
편의시설과 80여곳의 공원, 거리에서 미국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서 한 줄 찾아보기 어려운 이 작은 도시를 미국인들은 '여성이 살기에
가장 좋은 도시'로 꼽는다.

미국 뉴욕에서 발행되는 여성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은 해마다 미국
200개 도시를 상대로 한 '여성의 삶의 질' 조사에서 2년 연속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어바인을 선정했다. 교육과 취업기회, 범죄율, 보건,
육아, 쇼핑편의성, 날씨, 라이프 스타일, 정치, 경제 등 10여개 항목이
이들이 평가하는 지표다. 어바인은 거의 모든 항목에서 최상위급 점수로
부동의 종합 1위로 올라섰다.

반도체와 무선인터넷 접속 소프트웨어 생산업체 '인티실'의 마케팅부장
비키 빌링스는 그 이유를 "어바인은 전문직이건 사업가건 혹은
전업주부건 간에 여성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도시답게 탁아 시설은 필수.
어바인은 인근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시청 내에 자녀 양육부서를 설치해
교육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고, 시립·사립 탁아소가 100여개, 개인이
운영하는 놀이방도 170여개에 이른다. 상공회의소 사무국장 린다
벤자민(56)은 "남성 직원들이 자녀를 탁아소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느라
아침 회의에 지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한다.

어바인은 여성의 정·관계 진출이 활발하기로도 유명하다. 최근까지
시장이 여성이었고, 실무상 시정 최고직인 시티 매니저 앨리슨 하트도
여성이다. 시청의 국장급 이상 여성비율이 절반을 넘고, 상공회의소
직원의 71%가 여자이다. 그렇다고 시가 여성을 위해 제도적으로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능력있고 일하기 원하는 여성, 아이를
안전하게 제대로 키우고 싶은 여성들의 희망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원칙뿐이다.

이 원칙은 40년 전인 지난 61년 이 곳의 소유주였던 '어바인 컴퍼니'가
고용창출과 주거환경, 쇼핑, 교통, 교육, 녹지환경, 위락시설 등 7개
요소를 고려한 마스터 플랜을 세워 계획도시로 만들기 시작한 뒤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안전과 교육은 여성들에게 가장 민감한 항목. 미 연방수사국(FBI)은
어바인을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선정했고, '머니'
'페어런츠 매거진' 등 잡지들은 '아이 키우기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어바인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약방지 교육프로그램은 미국 내
최고다. 차를 도로변에 오래 방치하거나 차고 문을 오래 열어둬도 신고가
들어온다. 문제가 있는 청소년을 발견하면 감시나 처벌로 끝내지 않고
집안환경과 부모·형제까지 재교육한다. 지난 한 해 주요범죄 건수는
5%가 줄었다.

어바인 컴퍼니가 기부한 땅에 세운 UC어바인은 지난해 시사주간지 US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선정한 우수 주립대학 10위에 선정됐고, 어바인 내
고교들의 성적지수는 미국 내 톱 수준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전업주부
낸시 허트먼은 '좋은 교육조건, 안전한 환경에 마음이 끌려' 4년 전
이곳으로 이주했다.

어바인은 미국 내 어느 다른 도시 못지않게 젊고 활력이 넘치는 도시다.
지난 10년간 컴퓨터 소프트웨어, 무선통신, 생화학, 자동차, 의료장비 등
첨단 업종의 대표 기업들이 1주일에 4개꼴로 몰려들었다. 도시 동쪽의
하이테크 중심지 '어바인 스펙트럼'에는 미국 500대 기업 중 20개가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당연히 여성의 취업기회도 많아졌다. 실업률은
미국서 제일 낮은 1.8~2.0% 남짓이고 인구의 절반 가까운 7만1400여명이
직장을 갖고 있다.

★어바인은 어떤 곳?
주거환경등 마스터플랜 세워 71년 재탄생

로스앤젤레스에서 남쪽으로 45분 거리에 있는 어바인은 미국의 대표적인
'성공한 계획도시'다. 당초 '여성이 살기 좋도록' 만들기 위한
특별한 목표나 우대정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살기좋은
도시'를 만들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노인이 살기
좋아진 것이다.

1971년 시로 재탄생하기 전에는, 이 곳은 제임스 어바인(James Irvine)
가문이 대대로 목장을 해오던 121㎢ 규모의 목초지였다. 어바인 가문
소유의 개발회사인 어바인 컴퍼니는 고용창출·주거환경·쇼핑·교통·
교육·녹지환경·위락시설 등 7개요소를 고려한 마스터 플랜을 세워 이
도시를 개발했다. 커뮤니티마다 가까이에 학교와 공원, 쇼핑가를
배치했고, 벤치 하나 놓을 때도 위치와 환경을 감안한 철저한 조사와
사전계획을 거쳤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 괜찮은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땅 소유주의 의지가 굳었고, 그와 더불어 시정부와
상공회의소의 3박자가 잘 맞아떨어졌다. 어바인 컴퍼니는 주립대학을
세우기 위해 단돈 1달러에 1000에이커의 대지를 기부했고, 그로 인해
미국 내 10대 우수 주립대학으로 성장한 UC어바인이 탄생했다.

어바인은 이제 컴퓨터·통신업체 등 2200여 기업이 밀집한 첨단 하이테크
도시로 불리고 있다. 1975년 3만1750명이었던 인구는 지난해
14만4600명으로 5배로 증가했다. 시는 인구가 20만명에 달하면
인구유입을 억제할 계획이다. 현재 레이크 포리스트, 라구나, 알리소
비에호 등 인근 도시를 비롯, 미국 내 숱한 위성도시들이 어바인을
모델로 계획적 도시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어바인(캘리포니아)=이자연기자 ach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