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서두칠 등 지음
김영사

책상물림들이 보면 기적이라 하겠다. 당사자들은 365일 정시근무라는
열정으로 이룬 성과이되, 기적이 아니라 상식과 원칙의 승리라 한다. IMF
이후 기업 퇴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영 순위로 꼽히던 회사가
한국전기초자였다. 97년 여름, 극심한 노사대립으로 77일간의 파업 끝에
한국전기초자는 대우그룹에 팔렸다.

대우가 지목한 전문경영인 서두칠
사장이 구미행 야간열차를 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차입금 4,700억원,
부채비율 1114%, 한 해 600억원의 적자가 이 무렵 회사의 자화상이었다.
회사를 진단한 컨설팅 회사 부즈알렌 해밀턴은 "이 회사는 현재의
경쟁력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가차없는 선고를 내린
상태였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차입금 제로, 부채비율 37%, 국내
700여개 상장사 중 영업이익률 1위, 1717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기적의
초자'로 불린다.

흔히들 한국에서는 성공한 경영혁신 사례가 없다 한다. 해외에서 공인된
특효처방이 여기서는 안 먹힌다고 흰소리를 해댄다. 거창한 것 찾는
이론가들은 재벌 위주의 경제 구조부터 시작해 이 나라 경제 전체를
싸잡아 어쩔 수 없이 모래밭인 풍토에서 싹 날 리 없다는 혁신 불가론을
토해낸다.

그렇게 모두가 버린 한국전기초자는, 전문경영인 서두칠
사장과 1600명의 "초짜맨"들에 의해 면모를 바꿨다. 경영혁신이라면
사람 자르고 재산 파는 거라고 믿는 우리 풍토에서 단 한 명의 강제
해고나 자산 매각도 없었다. GE의 잭 웰치식입네 하고 이름 붙일 몇
가지 계명이나 색다른 비법도 없다. 고용보장은 사장이 아니라 고객이
해준다, 마음을 열고 대화한다, 경영정보는 공개한다, 물건은 1달러 싸게
팔되 그로 인한 손해는 생산성 향상으로 메꾼다 등등이 그들의 무기고
철학이다.

그들은 이런 상식을 철저히 현실에 적용했다. 특히, 사람을 줄이기보다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원을 재배치하고, 제조 라인을
재가공하는 '상식'들은 다운사이징이라면 뭐든지 축소하는 것이라는
얕은 편견들을 통렬하게 반박해낸다. 이들로부터 당장 모방할 명제가
없는 이유는 평범함 때문이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단 상식적이 된 다음에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찾아
낸 매서운 명제들을 페이지마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말은 사실 한 가지다. "우리는 다르게 했다." 남들처럼 먼 데 이론을
끌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 안다 하면서 정작 아무도 안 지키는
상식과 원칙을 지킨 결과일 뿐이다. 쉽지만 명쾌하다. 덧붙여, 독자가
경영자라면 서두칠 사장을 탐구해 봐야 한다. 그 사람이 현장에서 체화한
리더십을 가르칠 학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박종영·IT마케팅 컨설턴트·엠에이컴(주)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