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상 소더버그, 주연상 러셀 크로우-줄리아 로버츠 ##


사상 유례없는 난타전이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마지막 순간 멀리
로마의 검투사를 향해 미소지었다.

25일 저녁 5시30분(미국 시간) 로스엔젤레스 쉬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제73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 사극 '글래디에이터'가 작품상을 차지했다. 감독상은
'트래픽'의 스티븐 소더버그가 받았다. 러셀 크로우는
'글래디에이터'로 남우주연상, 줄리아 로버츠는 '에린 브로코비치'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이안 감독의 무협영화 '와호장룡'이 기세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첫 시상 부문인 미술상(티미 입)을 받은 '와호장룡'은 이후
촬영상(피터 파우) 작곡상(탠 둔) 외국어영화상(리안) 트로피를 차지하며
초반 분위기를 압도했다. 이날 행사는 리안 감독을 비롯한
'와호장룡'의 수상자들을 포함해, 시상자로 나선 주윤발과 양자경,
주제가를 직접 부른 코코리와 작곡상 후보곡을 연주한 첼리스트
요요마까지 한바탕 중국인들의 축제였다.

중반에 이르러서는 '글래디에이터'가 뚝심을 발휘했다. 의상상(젠티
예이츠) 수상으로 포문을 연 이 영화는 음향상(스캇 밀란 외)
시각효과상(존 넬슨 외) 남우주연상을 따내며 강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종반에 접어들면서 '트래픽'이 힘차게 떠올랐다. 편집상(스티브
미리온)과 남우조연상(베니치오 델 토로)을 받은 후 오래도록 침묵했던
이 영화는 막판에 각색상(스티브 개그헌)과 감독상을 연달아 따내며
장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작품상 하나만을 남기고 각축을
벌이던 세 영화가 따낸 트로피는 각각 4개씩. 하지만 6000여명에 이르는
아카데미 회원들은 결국 '글래디에이터'에 작품상을 안김으로써
'최후의 이변'을 거부했다.

올 아카데미 시상식은 현재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러셀 크로우와
줄리아 로버츠에게 명예까지 안겨주어 최고 남녀 스타의 월계관을
씌웠다. 줄리아 로버츠는 후보 지명 때부터 수상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져왔지만, 막상 트로피를 손에 안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특유의
함박 웃음을 연달아 터뜨렸다. "텔레비전이 이미 있어서 좀 길게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아카데미는 시상식이 지연되는 것을 염려해 올해
가장 짧게 인사말을 마친 사람에게 컬러TV를 주겠다고 했다)고 입을 열어
객석을 즐겁게 한 그는 "일일이 감사드려야 하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오랜 시간 팔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성을 질려가며
기쁨을 만끽했다.

막강 후보 톰 행크스를 누르고 수상자가 된 러셀 크로우는 예상치
못했던 듯 어깨를 으쓱하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영화 쪽 일을
하셨는데, 아카데미가 계속 나를 이 세계에서 기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 같아 고마울 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미
'필라델피아'와 '포레스트 검프'로 두차례나 트로피를 받은 톰
행크스는 99년(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이어 또다시 사상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제패 영광을 미래로 미뤄야만 했다. 그는 남우 주연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 사회자 스티브 마틴이 "방금 FBI가 러셀
크로우를 납치한 범인의 이름을 발표했는데 그는 바로 톰 행크스"라고
'독한' 농담을 할 때 이미 기분이 상해 있었다.

마이클 커티즈 이후 63년만에 처음으로 동시에 두편(트래픽, 에린
브로코비치)을 감독상 후보에 올린 스티븐 소더버그는 표의 분산으로
정작 수상엔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수상에 성공하지
못한 커티즈와 달리, 소더버그는 리안(외호장룡)과 리들리
스콧(글래디에이터)이란 강력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결국 감독상을
차지했다.

제73회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