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선수가 좋은 성적을 올려 1000만달러 가까운 연봉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일인 것처럼 좋아했다. 또 이종범
선수가 부진하여 연봉협상에 난항을 거듭했을 때 우린 모두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가 능력에 따라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외국의 사회풍토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IMF 경제 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의 한풍이 몰아치고 각
기업마다 사원 연봉제 도입을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낯익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연봉제란 먼 나라
외국 기업에서나 유행하며 사용되는 제도로 인식돼 우리 가슴에 선뜻 와
닿지 않는 게 현실이다. 박찬호 선수의 연봉결정은 아주 편하게
수긍하면서 왜 우리 자신의 연봉계산은 불편한 것일까?
일단 연봉제가 가져다주는 정서적 불편함은 우리가 자라면서 익숙해 있는
유교적 문화유산 때문이다. 장유유서, 즉 연공에 의해 평가받고 연공에
의해 승진하며 연공에 의해 월급을 받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수백년간 연공에 의해 앞뒤가 결정되는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되어
있다보니 후배를 상사로 인정하기란 몹시 힘든 국민정서이다.
연봉제하에서는 업무실적에 따라 평가받고 봉급액수가 결정된다. 이렇게
되면 직장 내에서는 자신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동료 간 경쟁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인간관계가 황폐화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직장
분위기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해 연봉이 결정되는 왜곡된 연봉제가
실시될 수도 있다. 결국 연봉제는 궁극적으로 극소수의 능력 있는
사람에게 봉급을 몰아주고 다수의 근로자를 패배자로 만드는 비인간적
제도라 매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연봉제에 대한 우리의 불편한 심기에도 불구하고 연봉제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할 시대가 온 것 같다.
전 세계는 현재 경제전쟁의 와중에 있다. IMF 경제 위기는 얼마나
순식간에 우리의 생활이 달라질 수 있는가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세계 경제전쟁에서 생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우리 사회가 무원칙
평등주의가 아닌 공정한 평가에 의한 능력 우선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연봉제가 올바르게만 실시된다면 긍정적 효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개별 근로자에게 업무성과에 따라 보상을 해주므로 개인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스스로 동기
부여된 근로자가 일하는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개별 근로자의
근로의식을 부추기지 못하는 하향 평등주의 때문이었다.
연봉제를 실시하기 위해 직장에서는 근로자 개개인에게 업무상 필요한
역할, 책임, 목표를 명확히 정해주고 그 역할, 책임,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를 공정하게 평가하여 그 결과를 임금으로 지급한다. 이러한
연봉제 추진과정이 투명하게 알려지면 근로자들은 상사와 직장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된다. 직장 내 신뢰분위기는 직장전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더
높은 실적을 올릴 수 있게 한다.
어떤 제도이든 새로 시행될 때에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상존하게
된다. 연봉제도 우리 현실에 맞게 부정적인 결과를 최소화시키며 긍정적
결과를 극대화시키면 개인근로자, 기업, 사회, 국가 모두에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사람은 일을 통해 생계를 위한 보상을 받고 인간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직장 내에서 공정한 평가를 받고, 투명한 제도 속에서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의 하나이다. 올바른 능력주의 연봉제가
정착하는 것은 생산적 직장, 건강한 사회, 경쟁력 있는 국가를 건설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고려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