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보로의 장에 가면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그리고 타임….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스카보로 페어'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묵은 겨울을 벗어버리고 맞는 새 봄의 아침상에는 묵은 김치와 묵은 장이
아닌 뭔가 이국적이고 상큼한 음식이 생각난다.
나무에 달린 상태로 지중해 태양열에 영근 산 마르자노 토마토(껍질이
얇고 향취가 있음)나 따스한 땅의 양분을 먹고 자란 아티초크를 한 입
베어먹으면 어떨까? 달콤한 멜론을 이탈리아 정통햄에 싸서 먹는
'프로슈토'라든가 종이쪽처럼 얇게 저민 날쇠고기를 파르메잔치즈,
케이퍼 양파 등과 곁들여 먹는 카파치오는?
식욕이 동하면 살 맛이 난다. 하루에 세 번씩 치러내는 먹는 일은 흔히들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데, 사실은 이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이 여겨진다. 요리하는
걸 너무 좋아해 살이 엄청나게 쪄서 해외공연이 어렵다는 성악가
파바로티는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지휘자 정명훈씨가 KBS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취임 기념음악회에서 축하차 온 김수환 추기경에게 손수
만든 파스타 소스를 병에 담아와서 선물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살던 샌프란시스코는 미식가들의 도시이다. 동부보다 개방적인
서부에는 이탈리아계, 중국계, 월남계, 러시아계 등 소수민족들이
일찍부터 뿌리를 내렸고, 저마다 자신들의 음식을 만들면서 이민역사를
만들어냈다. 이탈리아계가 많이 몰려있는 '노스 비치'에 가면 삶은
게를 파는 손수레와 노천 카페에서 해산물과 치즈를 굽는 냄새가
풍겨나오고, 바로 곁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음식점 진열장에 걸린 갈색으로
구워진 오리들이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노천 카페와 레스토랑들의 야단스러움을 뚫고 걷노라면 절로
삶의 의욕이 생겨난다.
샌프란시스코는 소수민족들이 이웃하고 살다보니 다른 민족의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고 고유의 음식에 타 민족의 식문화를 흡수해서 베트남식
프랑스 요리, 멕시코식 미국요리, 프랑스식 중국요리 같은 퓨전음식들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그리고 음식전문 채널에서도 소수민족들의 음식이나
퓨전음식들을 많이 소개한다. 그런데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같은
아시안 국가들의 음식은 정통식이든 퓨전식이든 많이 방영되는데
한국요리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특히 일본의 스시는 상류층부터 침투해서
이제는 풍류를 아는 사람들은 일식집에서 젓가락질을 하는게 멋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은 정통음식뿐만이 아니라 퓨전음식에도 솜씨를 발휘해서
이탈리아나 프랑스요리가 현지보다 더 훌륭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음식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곳곳에 먹자골목이 들어차있는 서울의 음식점들은 수적으로 가히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서울의 음식은 다양성이 부족할 뿐더러 맛도
점점 달아진다 할지, 비슷한 양념을 쓴다는 점에서 차별성도 적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내세울 수 있는 우리나라 음식이라는 건 지방에나 남아
있는 향토음식, 그나마 연로한 분들이 타계하면 맛이 끊어지는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즈음 서울 청담동을 중심으로 하루가 다르게 이탈리아 음식이나 퓨전
음식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음식의 다양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고급스럽고 분위기 있는 외양에 반해 들어가서
음식을 먹어보면 대체적으로 실망스럽다. 이건 '퓨전'이라는 것
때문이다. 퓨전이라는 건 오랜시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이전에는 정통에 대한 완성이 있어야 한다. 서울의 퓨전은 너무 성급히
왔다. 그것들은 정통음식의 설익음을 포장하는 눈가림인 것만 같다.
(소설가·‘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