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퇴 1 호 묘에서 발견된 착의시녀용(着衣侍女俑·옷을입은 시녀의 인형).무덤 주인인 귀부인‘신추 ’의 시녀로 추정된다.

■마왕퇴의 귀부인
웨난 지음
이익희 옮김, 일빛

시간을 물리적으로 응고시킬 수 있을까? 2천여 년의 시간을 그대로
묶어 두었다가, 멈추었던 탁상시계가 다시 째깍째깍 초침을 움직이듯이
다시 가게 한다면? 물론 천문학이나 미래 과학에서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괴기영화가 아니고서야 지구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 지난 세기 중국의 위대한
고고발굴, 즉 안양의 갑골문, 서안의 병마총, 돈황의 막고굴 외에 당시
죽의 장막 속에 1972년 호남성 장사 교외의 오리패, 속칭 마왕퇴
한묘에서 뜻밖의 유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중국 역사와 문화
학술을 다시 검증해야 할만큼 엄청난 것들이었다.

그런데 무생물의 유품들이야 시간을 삭이기에 그다지 숨가쁨이 적어,
어디서 발견되건 유물로서의 가치로 값을 매기면 그만이겠지만 사람의
유체가 2천년이 넘도록 손가락으로 누르면 다시 살아나도록 피부에
탄력이 있고, 게다가 몸에 방부제를 주사하자 동맥을 따라 천천히
스며들어 퍼져나간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1971년 12월 문화대혁명기, 주은래와 사인방의 암투 속에 전쟁을 대비,
군인들이 대형 방공호를 파기 시작하였다. 마왕퇴. 정확한 기록도 없이
그저 서한 시대 장사왕 유발, 혹은 그의 어머니 정희와 당희의 이희묘,
또는 오대 초나라 왕 마은의 무덤일 것이라는 속설만 전할 뿐 황량하게
방치된 조그만 구릉 위의 흙무더기 옆이었다. 지하궁전을 발견한
군인들은 혼비백산하였고, 이듬해 발굴 끝에 모든 것이 밝혀졌다.

피장자는 서한 장사국의 왕이 아닌 승상 대후라는 작위의 이창(2호묘),
그리고 그의 부인 신추(1호묘)와 그들의 아들(3호묘)등 모두 3기였다.
그의 아들이 묻힌 것은 B.C. 168년 2월이라는 확증된 기록도 함께
출토되었다.

무덤 안에는 3천 6백여 점의 온갖 유물이 손상되지 아니한 채로 넘쳐날
듯이 쌓여있었다. 견직물, 칠기, 목용, 명전, 죽간, 백서, 그림, 기구,
심지어 음식물과 곡식, 과일, 각종 씨앗 등, 새로운 세계로 이주하여 새
세상을 열어도 즉시 모든 산업과 활동이 가능할 만큼 다양하며 완벽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부인 신추의 시신이었다. 아홉겹의 비단에 싸인 키
154cm, 당시무게 34.3Kg, 50세의 여인. 숨을 멎은 즉시의 모습 그대로
2천여 년을 단 몇 초인 양 뛰어넘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발굴과 동시에 장사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중국에서 내로라 하는 단위의
학자 수백 명이 임무를 띠고 과학적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미
중국 천지에 놀라운 신화가 입으로 번져나고 있었다.

"그 귀부인이 살아나 앉아 무어라 말을 했다더라.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북경에서 곽말약을 모셔와 대면을 시켰다. 곽말약은 그것이 2천년
전 한나라 때의 말이라 하였다. 곽말약이 면담을 하고 나서 그에게
사과를 주었더니 신기해 하며 받아먹었다더라."

이리하여 구경꾼들이 박물관으로 몰려들어 결국 밤에 몰래 시신을 다른
의과대학으로 옮겨야 할 정도였다. 이처럼 현대판 전기를 만들어낸 이
귀부인.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편 학계에서는 마왕퇴 한묘 출토의 유물 중에 백서의 '노자',
'전국책', '주역', '춘추사어' 등과 점성서, 의학서, 양생술,
기술서 등에 대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 일부는 현존하는
같은 책과 사뭇 차이가 있었고, 사라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빛을 본
자료는 학술적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왕퇴로 인해 누항에서는 귀부인의 기담이 돌고, 학계에선 천여 편의
논문과 수백 종의 관련 연구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복식과 그림, 칠기, 목공예 등 부장품은 미술사와 생활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엄청난 유물발굴 현장의 이야기 소설식으로 엮어낸 소장 문필가
웨난(1963∼)의 독특하고 뛰어난 필법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 현장의
참여자, 또는 고고학자로 착각하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저자는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세밀하기 이를 데 없는 전개 방식으로 '진시황릉',
'법문사의 비밀' 등을 통해 우리에게 꽤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책은 원색 사진을 40여 쪽이나 할애하여 눈으로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꾸며져 있다.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내가 전생의 2천년전 한
제국 남쪽 물산 풍부한 장사국의 귀족이 되어 여유와 부귀에 흠뻑 젖은
과거인으로 돌아가는 가는듯 하다.

중국 땅엔 어찌 그리도 희한한 것이 많이 묻혀있는가? 지금도 고도나
유적지를 여행하다 보면 "왕손 귀족 춤추며 노래하던 터, 해는 기울고
까마귀 참새만 날아드는"(단간고래가무지, 유유황혼오작비)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그들은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감회와
궁금증이 발길을 멈추게 하곤 한다.

(임동석·건국대학교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