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고작 한개의 난자를 향해 1억개가 넘는 정자들이 죽기살기로
돌진하는 것일까. '선착순'에 따라 오로지 1등으로 난자와 접촉한
정자가 수정에 성공한다는 통념을 뒤집고, 난자가 일종의 테스트를 거쳐
'똑똑한 정자'를 선택한다는 주장이 새로이 제기됐다.
미국의 코넬대 연구팀이 수정 과정을 난자 입장에서 해명, 난자는 정자에
비해 수동적이고 둔할 만큼 안정적이라는 기존 학설에 일격을 가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7일 전했다. 난자의 표피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암호를 풀어야 한다는 것.
이 연구팀은 포유류의 난자에 들어 있는 3개의 생식 단백질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화하며 '일등 신랑감'을 가려낸다는 연구결과를
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했다. 이들 중 ZP2와 ZP3로 불리는 두 단백질은
정자가 뚫고 들어오는 난자 표피에 자리를 잡고 난황(yolk)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계란의 노른자 격인 난황은 염색체를
담고 있다.
정자는 경쟁자들을 앞지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난자는 일단 수정이
되면 빗장을 걸어잠근다는 것이 기존의 통설. 그런데 이번 발견은 난자
단백질도 다윈의 이론에 따라 진화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리아나
울프너(Mariana Wolfner) 박사는 "난자의 생식 단백질도 정자 단백질
못지 않게 활발히 변화하며 새 암호를 만들어낸다"며 "이 암호를 풀지
못하는 정자는 난자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