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만에 재회한 형제는 서로에게 아버지의 소식부터 물었다. 형제의
아버지는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인 정지용. 하지만 북에서도,
남에서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 찾으러 간다더니 드디어 왔구나.”
남쪽의 형 구관(73)씨는 이제야 돌아온 동생 구인(68)씨를
얼싸안고 굵은 눈물을 흘렸다. 구인씨는 "아버지는 김소월 시인과 함께
북에서 최고의 애국시인으로 꼽힌다. 애국시인의 아들이라는 점 덕에
많은 은덕을 입었다"고 했고, 형은 말없이 들었다.
북의 동생은 그러나 "아버지는 북한으로 오시던 중 남한의 소요산에서
폭사하셨다"며 이미 알려진 북한문학계의 주장을 되풀이해 정지용
시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구관씨는 그러나 내내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다. 50년 7월 말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어린 동생(당시
배재중2학년)이었다. 피아노를 곧잘 치는 동생의 손에는 어느새 잔주름이
지난 세월의 흔적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이 기쁜 날이 올 줄은…. 형님, 고생 많으셨죠?”
북의 동생은, 월북시인의 아들로 알려져 남한에서 험한 삶을 헤쳐온 형의
굵은 손마디를 연신 어루만졌다. 충남 보령 탄광에서의 광부생활과
보따리장사로 굵어진 형님의 손마디에 동생은 목이 메었다.
"71년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를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형
구관씨가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 얘기를 꺼내자 구인씨의 눈시울도
붉어지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 통통하고 예쁘장하던 오빠가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한 막내 여동생 구원(67)씨도 말을 잇지 못했다.
연년생이라서 가장 친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던 사이였다고
했다. 여동생은 죽은 줄 알고 69년 사망신고까지 했던 오빠의 얼굴을
연신 어루만지며 어렸을 적 모습을 찾으려 노력했다.
“시 ‘고향’ ‘향수’ ‘호수’…. 기억나니?”
잠시후 남쪽의 형은 북의 동생에게 아버지가 썼던 시를 화제로 꺼냈다.
구관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문학은 배고픈 공부'라고 해서 문학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고 둘이서 몰래 숨어서 시를 읽곤 했다"며 지난
세월을 더듬었고, 동생도 머리를 끄덕였다.
구관씨가 북의 동생 생존소식을 들은 것은 98년. 중국 옌볜에서 개최된
'지용제'에 참석했다가 조선족 문인들로부터 "동생 구인이가 북한땅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동안 1·2차 상봉신청을 하는 등
백방으로 애쓰다가 이번에야 그리던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우리 나이로 100살이신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라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정지용 시인의 소식을 확인하지
못한 아들들은 못내 아쉬운 듯 상봉시간 내내 두런두런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