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만화정보센터의 큐레이터로 작년 12월 채용된 선정우(27)씨는
인터넷 동호회나 관련잡지 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유명한
만화매니아다. 현재 만화센터에서 각종 관련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핵심작업을 맡고 있다. 전에도 만화페스티벌의 임시 큐레이터가
있었지만, 상임 큐레이터는 부천 만화정보센터에 활동하는 2명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만화에 대해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공공기관의
직함을 얻었다는게 한국 실정에서는 꽤 놀랍다.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자료 모으는게 좋았어요. '캔디'를 TV에서
방영하면, 그 만화에 대해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꼼꼼히
정리했습니다. 신문이나 관련 잡지에 나오는 만화기사도 빠짐없이
스크랩했지요.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번 돈도 만화책 잡지 비디오테이프
LD 사는데 전부 써버렸습니다." 선 씨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모으고 기록하면서, 저절로 만화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서울 일원동 집. 그의 방에는 만화 관련서적만 1만권 이상 쌓여있고, LD
비디오테이프와 최근 모으기 시작한 DVD까지 1000여개의 영상자료가
가득하다. 90년 케텔(하이텔 전신)과 피씨서브(천리안 전신)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선 씨는 95년 하이텔 만화동호회 '애니메이트'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만화 전반에 대한 강력한 '내공'으로 명성을 떨쳤다.
96년엔 나가노 마모루의 SF환타지 '파이브스타 스토리즈'를 번역했고,
그외 각종 일본 애니메이션 자막작업에도 참여했다. 한국판 '뉴타입(New
Type)' 등 만화·게임잡지에도 꾸준히 칼럼을 쓰고 있다.
"만화에 대한 문의메일에 답장할 때마다, 만화와 관련된 의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 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부천 만화정보센터의 규장각 사업이 바로 그런 시도인거죠. 일본이
만화왕국이라고 하지만, 공공부문의 만화 데이터베이스랄게 없으니
우리가 처음인 셈입니다." 만화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계획은 99년 5월
만화정보센터 개관 이후 추진된 규장각 사업의 중심사업. 영화의
IMDb(Internet Movie Database) 사이트처럼 일반인에겐 만화도서관처럼,
전문가에겐 온라인 전문자료실로 이용할 수 있도록 꾸며진다. 3월1일부터
일부 서비스를 시작하며, 2002년 초까지 데이터베이스를 완비할 예정.
현물자료실에는 한국만화 7만여권, 일본만화 6000여권, 서구만화
2000여권도 구비돼 있다.
"출판된 지 3~4년만 지나도 구하기 힘든 만화가 많습니다. 상세한
정보를 찾아보려 해도 해당 작가조차 자료를 갖고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요. 제 지식이 한국만화의 지식기반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겠네요." 선 씨의 꿈은 작고 소박해 보였지만, 만화를
향한 애정만큼은 꽤나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