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가 망명 4주년에 즈음해 발표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을
보면 황씨에 대한 국정원의 간섭과 제약이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정원의 어정쩡한 태도는 국정원이 대북 공안기관인지, 대북
대화기구인지 심히 헷갈리게 만든다. 국정원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안전을 지키는 최고의 안보기구라면 그에 걸맞게 황씨 같은
사람의 활동을 보장해야 할 터인데도 그의 주장이 정부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오히려 「족쇄」를 채우고 있으니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물론
국정원도 남북대화가 진전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어야 하지만
남북화해나 대화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나라이고
의사표시가 자유로운 사회라는 사실이다.
황씨는 작년 11월 정치인과 언론인 접촉금지 해제 등 다섯 가지 사항을
국정원에 요구했으나 아직까지 하나도 시정된 것이 없다. 참다 못해
황씨는 이번에 최소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탈북자 소식지
「민족통일」지 복간을 요구한 것이다. 자신의 망명목적이
「북한민주화」에 있는데 그 「도구」를 빼앗기면 자신의 존재이유가
없다는 황씨의 주장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가 기회있을 때마다 하는
『밥만 먹으러 온 게 아니다』라는 절규는 북한 민주화가 이른바
수령독재체제의 청산 없이는 이룩될 수 없다는 신념을 말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이 아무리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대로 존중해 줘야 한다. 정부당국자들은 걸핏하면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괄목하게 발전했다고 자랑하면서 황씨에 대해서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국민의
기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 자유를 찾아온 그가 그 사회로부터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 최고의 아이러니다.
국정원측은 황씨의 「제한조치」에 대해 절충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황씨가 언론인을 만나거나 책을 발간하고 외부에 출강하는 것이,
또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펴내는 것이 어떻게 「절충」의 대상이란
말인가. 국정원이 북한의 눈치나 보는 기관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하루빨리 황씨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