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단체장 선거가 끝난 직후 A군. 한 지역 유지가 소유한
땅에서 온천수가 발견됐다. 그는 돈 보따리를 들고 재선한 군수의
사택을 찾아갔다. 그저 인사하러 갔다고 했다. 이보다 앞서 그는
군의원을 사업 파트너로 영입했다. "교제비를 쓸 데가 많다"며
군의원이 먼저 손을 벌려와 차용증을 받고 빌려줬다고 하지만, 어쨌든
5000만원을 주기도 했다. 그 뒤로 그의 온천 개발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검찰에 소환된 것은 2년이 지나서였다.

문제의 군의원이 중도 사퇴했을 때, 의회에서는 선거법에 따른
보선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지역 민심은 "경제사정도 어려운데
그런 구의원을 다시 뽑느라 돈쓸 필요가 어딨어"라며 냉랭했다.

경기도 B 시의원은 주택건설업자에게 고층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고도
제한 및 풍치지구 지정을 해제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런 뒤 시장에
대한 교제비 명목으로 2억7000만원을 받아 구속됐다. C 구의원처럼
무허가 단란주점 업주에게 "구청에 부탁해 허가를 받아주겠다"며
3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잔챙이' 사례도 있다.

일부 지방의원은 단체장과 건설업자 사이에서 일종의 브로커 노릇을 맡아
이권을 챙긴다는 의혹에서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단체장과 결탁하거나 앞서서 비리를
알선한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구청에서 발주한 도로공사의 입찰 예정가를
건설업자에게 미리 빼주고 돈을 받는가 하면, 관내 노상 주차장을 사전
담합으로 불법으로 낙찰받은 경우도 드러난 적이 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가장 전통적인 검은 돈 조달 방식은 의회의
상임위 활동을 통해 관련기관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받는 것"이라며
"비리를 폭로할 것처럼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공갈 수법도 동원하지만,
통상 청탁이나 민원을 들어준 뒤 반대급부로 사례금 형식의 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설문 조사를 했다. 지방의원이 지적 사항을
묵인해주는 조건으로 관련 공무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는가에 대해 퇴임공무원의 26.5%, 현직 공무원은 6.0%에서
'그렇다'는 답변이 나왔다. 지방의원 스스로도 16.5%가 '지방의회의
비리와 부패가 심하다'는 답변을 했을 정도다.

지난 97년 E시의회 회의장. 황모 의원이 "기업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의원직을 자신의 방패막이와 이권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현실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발언한 뒤 사퇴서를 제출했다.
회의장이 벌컥 뒤집혔다. 시의회가 의장 직권으로 그의 사퇴서를 전격
수리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덮였다.

부단체장을 지냈던 한 고급공무원은 "지방의원들은 공무원에게 직접
청탁하기보다 상임위원회에서 예산 책정과 안건을 처리할 때 특정 업체를
봐주는 수법을 쓴다"며 "일부 의원들은 사업 예산을 따낼 때 자신이
봐줘야 하는 건설업자를 지정해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명색이 명예직이라는 지방 의원들의 개인적 자질은 늘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낯뜨거운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작년 S시의회에서 해외연수를
실시하면서 여행사와 짜고 연수경비를 실제보다 부풀려 1200여만원을 더
책정했다. 그런 다음 의원들끼리 나눠 가졌다. 10대 소녀와 원조교제를
벌인 시의원이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대 김안제 교수는 "재력가나 지역토호가 주로 진출한 지방의회를
쇄신하기 위해 지방의원의 유급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한 지방의원들도 재선을 위해서는 필사적이다. 작년 말
S시의회에서는 일찌감치 끝날 것으로 알려진 예산의 계수 조정 작업이
밤 10시까지 끌었다. 시의원마다 자기 지역구의 공원조성사업에 예산을
더 따내려고 맞붙느라 그랬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지역
사업을 따올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들이 불요불급하다고
판단한 공원 조성 예산이 이 자리에서 309억원이나 늘어났다.

한국정당정치연구소의 박상병 기획실장은 "일부 자치단체가
민선단체장의 비리와 전횡 등으로 난맥상을 보이게 된 데는 지방의회의
책임도 없지 않다"며 "현재 중앙정당의 하위조직에 불과한 지방의회의
위상과 권한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