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돌아가신 게 확실하다길래 찾아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6·25 때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외아들만 애지중지 키워온 조금래(73) 할머니. ‘사별’로 생각한 지 반세기가 지난 1월 31일 오후, 집으로 찾아온 남편 리기탁(75)씨의 생존소식에 조 할머니는 “얄궂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구시 내당동에서 손녀들과 사는 조 할머니는 15세 때 리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전쟁이 나던 해 9월 임신한 상태로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야 했다. 기다리던 남편은 오지 않고, 대신 전사통지서만 날아왔다. “매년 동짓달 초열흘 제사까지 지냈는데….” 조 할머니는 “국립묘지 위령탑엔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역시 전사자로 처리된 형 손윤모(67)씨가 3차 방문단의 북측 예비후보에 포함돼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 상모(64·경남 사천시)씨는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냥 떨리고 설렌다”고 했다.
윤모씨가 국군에 입대한 것은 50년 10월 말. 형과 누나가 하나씩 있는 4남1녀의 셋째인 윤모씨는 전쟁 직후 소집통지서가 나오자 형 성모(78년 사망)씨에게 “형은 남아서 가정을 지켜달라”며 형을 대신해 자원 입대했다. 이후 ‘부산에서 1주일 교육 받고 전방으로 가는 중’이라는 편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