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이 끝난 뒤 너도 나도 새 대표팀에
대해 한마디씩 하느라고 상당히 소란스럽다. 끼리끼리 모이면 더욱
시끄럽다. 목욕탕에 가면 내 앞에서까지도 4·4·2, 3·5·2를 거론하며
전술과 문제점을 이야기 해보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전
국민의 축구 전문인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지난 칼스버그컵 대회는 우리가 히딩크의 축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히딩크가 우리 축구를 보는 기회였다. 불과 열흘간, 그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선수들을 처음 만나서 손짓·발짓에 어설픈 몇
마디로 가르치고 지켜본 지 열흘 만에 그가 우리 축구를 이해하고, 우리
선수들이 그의 축구를 이해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축구가 어렵다고
하겠는가?
내가 본 그는 아직 우리 선수들에게 적절한 임무를 나눠줄 만큼 선수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시급한 것은 히딩크가 하루
빨리 우리 선수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 감독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시행착오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서투름에 불안해 하거나 참견하고 싶어할 필요가 없다. 또 우리의
경험이나 정보를 그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이미 우리가 그를 선택한
이상, 우리의 조급함이 그와의 관계에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는 한국축구, 그리고 선수들의 수준과 부류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 후 그는 거기에 맞춰 자신의 전술을
변형시키거나 적용시킬 것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성공과 실패로
점철된 풍부한 경험 덕분에 그가 이런 외부의 소란스러움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용한 가운데 모든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월드컵에 우승한 감독은 아무도 없다. 바로 이런 것들로부터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일 수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프랑스의 자케 감독은 98월드컵 우승 후 지독히도 그를 괴롭히던 신문이
한 면 전체를 빌어 사과를 했을 때 "나는 그 사과를 받지 않겠노라"고
단호히 거절했을 만큼 시달림 속에서 우승했다.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프랑스 축구협회도 그 시끄러움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제 4·4·2를 쓰건, 3·5·2를 쓰건 그건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다.
그게 우리 축구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단
한가지 우리가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독은 신이 아니며, 그의
역할은 우리 축구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지 16강으로 가는
비법을 가진 쪽집게 과외선생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