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정국을 뒤흔든 「안기부 돈」 사건이 일단 잠복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1일 지난 정부의 실세들인 이원종, 홍인길씨를 조사한
뒤 귀가시켰고, 22일에는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장기 수사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대검 수사팀은 설 연휴
동안 수사를 멈추고 휴식할 계획이다.
검찰 수사는 지난 16일 「정치인 조사 포기」선언 이후 오히려 더 빨리
진행됐다. 김 전 차장에 대한 조사만 진행된 상황에서 충분한 준비없이
다음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이 조사에 불응하는 상황에서 압박용으로 조사한
신한국당 실무자들에 대한 조사는 수표 배서자와 사용처 추적의
일환이었을 뿐 다른 소득은 없었다. 돈을 받은 쪽에 이어 「총지휘」
의혹이 있는 청와대 라인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이·홍씨 조사의 단서는 청와대 직원들이 안기부에서 나온 수표에 배서한
흔적이었으나 조사결과 선거자금과는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원종씨에
대해서는 김 전 차장의 『나 혼자 다 한 것은 아니다』라는 진술과 강
의원과 수시 접촉하는 등 선거자금 조성·분배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단서들을 확보했지만, 이씨가 『안기부 돈은 모른다』고 전면 부인해
조사가 진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의 경우는 검찰관계자도
『소박하게 청와대의 정치자금을 만진 사람이니 이 사건의 경위도 알 것
같아서 조사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홍씨 역시 개입을 부인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현철씨 등 최고위층의 개입 여부에 대한
연결고리가 끊겨버린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 고위관계자는 『정치적
파장이 커 더 이상 판을 벌일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검찰수사가 마무리 수순이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러나 사건이 2차 태풍을 몰고올 변수는 여전히 잠복해 있다. 수사
실무자들은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체포동의안이
계류중인 강 의원도 반드시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22일 김 전
차장 구속기소 때도 수사발표를 하지 않는 등 모든 수사결과를 다
털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총풍」사건 때처럼 기소후 재판과정 등에서 재미있는
수사결과들이 공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계속되고 있는 자금
추적 등에서 의외의 단서가 포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